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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 고생하는 명절’, 잘못된 관습은 고쳐야
○ 배경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귀성과 귀경의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자동차와 고속버스를 선택한 이들은 평상시 소요 시간의 두세 배가 족히 걸리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첨단 산업사회라는 요즘, 대도시 위주의 삶을 살면서도 ‘가족’ ‘친지’ ‘효’ ‘보본의식’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설에 자식이 부모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시도한 노인이 있어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모인 가족 사이에서 반목과 질시가 발생하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자녀 세대의 서구화된 개인주의적 가치관 사이에는 간극이 엄존한다. 분명 어느 한 측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명절 풍속. 우리가 지켜야 할 아름다운 유산은 무엇이고, 버리거나 시정해야 할 유습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 찬성 논거(지켜야 할 가치)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동체(community)가 해체되었다. 전통적인 공동체는 100호(戶) 미만으로 구성된 폐쇄적인 부락의 형태가 그것. 전인격적이고 지속적인 상호작용,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을 특징으로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은 변했다. 전통보다는 실용을,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유대감과 친밀감을 희구한다. 그래서 가족 친족 중심의 전통적 관계는 유지된다. 결국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회 병리현상을 치유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명절의 의미와 가치는 강조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전통의 가치는 소중하다. 빠른 속도의 변화 속에서도 느림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Down Shift(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 ‘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방식)’ 등과 같은 신조어들은 현대인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서구화와 산업화, 그 빠른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전통은 행복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 반대 논거(시정해야 할 것)
성(性)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시정되어야 한다. 명절에는 ‘일하는 여성과 즐기는 남성’이라는 도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명절이 유지되고 그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곤란하다.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자녀 세대의 서구적 가치관, 이 둘의 괴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은 전통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변화를 담아냈을 때 전통의 생명력도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 상대적으로 무시되던 개인의 인권과 평등사상이 강조되고 있다. 가족이나 친족 관계에 있어서도 성숙된 생각이 필요하다.
○ 핵심 찌르기
과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혹은 ‘효(孝)의 나라’라는 전통을 강조하면서 명절의 풍습을 찬양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 속엔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음모’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전통이 현실의 변화를 무시하고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하여 이런 전통을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인습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 설을 맞아 일어나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독특한 문화현상을 보자. 오래도록 보지 못한 가족과 친족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인가. 명절의 어느 한 측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현실’과 ‘전통’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인간사회는 흔히 ‘공동사회(Gemeinshaft)’와 ‘이익사회(Gesellshaft)’로 구분된다. 현대 산업사회에도 여전히 공동사회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합리적이고 계약적인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여전히 정서적인 유대나 친밀감을 그리워하면서 향수를 느끼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기를 원하는 사회도 ‘합리적’이면서 ‘인간적’인 사회일 것이다.
○ 논술 쓰기
설 명절의 다양한 풍속 속에서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 미풍으로 계승해야 할 것과 시정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특정한 시각에 경도되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찰적 사고가 필요하다.
가족, 친족과 관련된 우리사회의 가치, 혹은 윤리의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자.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질서에 비추어 평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 관련 문제
삶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담고 있는 고전을 읽고,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 그 논지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경희대 2006년 수시2 논술]
권윤호 경기 용인 풍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