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우리가 당연시하는 ‘…데이’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일부러 만들어 냈을까요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1년 365일 중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을 국가 기념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3월 1일 삼일절을 비롯해서 6월 6일 현충일, 7월 17일 제헌절 등의 국가기념일을 정하고 매번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그리고 그 의례를 통해서 국민적 통합을 강화한다.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는 현재 37종의 기념일을 규정하고 있으며, 개별 법령에 의해서 8개 기념일이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기념일과 전통적 의례에 대해 에릭 홉스봄과 테렌스 레인저를 비롯한 학자들이 공동 저술한 책 ‘만들어진 전통’이 내놓는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그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럽에서는 새로운 국경일, 의례, 영웅과 상징물들이 대량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우리가 전통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조작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근대국가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집단적 기념행위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프랑스의 삼색기와 바스티유 함락 기념제, 노동절, 미국의 국기 경배의 제도화 등이 창조된 전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882년에 수신사 박영효가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일본행 메이지 마루호 선상에서 제작한 태극기가 어느 순간 국가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문양이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을 대표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화랑제도, 고려시대의 삼별초 항쟁,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 등이 영웅화된 것도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 정권은 역사 속의 군인 또는 군사집단을 영웅화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기업의 영향력이 커져가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인 기념일보다는 상업논리에 의해서 형성된 기념일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상업적 목적에 의해서 창조된 상징물이 특정 기념일을 대표하는 보편적 상징물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본의 모리나가 제과에서 초콜릿 판매를 위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했던 밸런타인데이가 청춘남녀들의 가장 귀중한 기념일이 되었다. 또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르는 산타클로스도 코카콜라가 창조해낸 캐릭터이다. 코카콜라의 로고를 연상하게 만드는 빨간 옷, 빨간 모자, 그리고 콜라의 흰 거품을 생각나게 만드는 빨간 옷의 흰 테두리, 흰 수염…. 이런 상징장치를 가진 산타클로스는 청량음료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겨울철에 콜라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강상식 학림논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