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2008 대입논술 해설

  • 입력 2008년 2월 18일 02시 56분


▼ 2008학년도 고려대 인문계 정시 논술 해설▼

(정시 문제는 고려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보편적 주제라도 일부러 낯설게 질문

2008학년도 고려대 정시 논술 인문계 문제의 주제는 ‘신뢰의 유형과 역할’입니다. 지난 수시 논술의 주제는 감정노동이었는데요, ‘노동’ 하면 익숙한 것이지만, ‘감정노동’ 하니까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하면 익숙하지만, ‘신뢰의 유형과 역할’이라고 하니까 이색적입니다. 둘 다 ‘보편적인 주제의 특수한 변용’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것이 고려대 논술의 일반적 패턴을 형성할지는 두고봐야겠습니다만, 고려대 논술 출제진이 주제 설정을 놓고 많은 고심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형식은 모의 논술 논제 및 수시 논술 논제와 동일합니다. 제시문은 전부 4개고, 긴 글 하나, 비교적 짧은 글 하나, 시와 통계가 하나씩입니다. 문제는 전부 3개였고, 글자 수는 각 400자, 700자, 700자를 요구했는데, 이것도 기존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질문의 형식도 한 문제는 요약, 다른 두 문제는 해설 혹은 논술로 예전과 유사했습니다. 수험생이 고려대 논술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측해서 그에 맞게 준비하도록 방향을 설정해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문제1

제시문(1)을 400자 내외로 요약하는 문제입니다. 제시문(1)은 신뢰를 ‘두터운 신뢰’, ‘얇은 신뢰’, ‘추상적 신뢰’로 구분하고, 각각의 특성 및 그에 상응하는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지요.

먼저 두터운 신뢰는 소규모의 대면사회, 즉 동일한 부족, 동일한 계급, 동일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으로 이뤄진 공동체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사회는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지만, 폐쇄적인 성격으로 인해 공동체 밖의 사회는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농촌’을 생각하면 쉬울 텐데요,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는 옆집 숟가락 수까지 알 만큼 가깝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텃세’를 부리는 식의 배타성을 보일 때가 많지요.

얇은 신뢰는 ‘자발적 결사의 연결망’이자 ‘약한 연대의 산물’입니다. 현대의 대규모 사회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동시에 ‘다원적인 경쟁을 유발’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경영자단체와 노동자단체, 환경을 중시하는 단체와 성장을 중시하는 단체가 서로 얇은 신뢰를 유지하면서 약한 연대를 이루는 동시에 상호 경쟁을 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의 대규모 사회가 유지된다는 뜻이지요.

마지막으로 ‘추상적 신뢰’는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시민권, 신뢰, 공정, 평등, 보편주의, 공동의 선’ 등과 같은 어떤 추상적 가치가 공유되고 이를 통해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으로,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강화됩니다.

즉, 두터운 신뢰는 동일한 부족이나 계급, 인종 간에 형성되는 것으로 강한 정서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고, 얇은 신뢰는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유지되는 것이라면, 추상적 신뢰는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지요. 그리고 두터운 신뢰와 얇은 신뢰가 구성원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유지된다면, 추상적 신뢰는 그것이 아닌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세 가지 신뢰 유형을 정리하되, 그것이 서로 대비가 되는 지점을 부각시킨다면 좋은 요약이 될 것입니다.

■ 문제2

제시문(2)의 논지를 밝히고, 이와 대비하여 제시문(3)의 시(詩)를 해설하는 것입니다. 문제에서 ‘대비’하라고 했기 때문에 (2)와 (3)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부각되도록 글을 써야 하겠습니다. (2)에 따르면, 불신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래 비용이 증대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또 구성원이 적자생존의 경쟁과 제로섬 같은 갈등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 같은 불신사회를 신뢰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결단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구성원의 공동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지요.

(3)에서는 최승호의 시 ‘권투왕 마빈 해글러’가 나옵니다. 이 시는 불신사회 속에서 자신만을 신뢰하며 불신과 싸우는 인간 투쟁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마빈 해글러에게 사각의 링은 불신의 세계로 인식됩니다. 그는 심판은 매수되기가 쉽다고 보므로 승부 조작이 가능한 판정승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무신론자’와 같습니다. 무신론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순교자’이기도 합니다. 순교자는 믿음의 극단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해글러는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해글러는 자신만 믿을 뿐,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교자이자 무신론자입니다. 사각의 링에서는 불신을 깨기 위한 공동 행위가 가능하지 않고, 서로 피범벅이 되어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끝내 죽게 되는 불쌍한 투우와 같이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2)와 (3)은 공통적으로 불신사회를 극복할 대상으로 보았지만, 그 양상은 다릅니다. (2)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극복할 것을 제시했고, (3)은 개인적 차원의 ‘순교’를 보여 줍니다. 나아가 (2)는 불신사회를 극복하고 신뢰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3)은 불신사회를 아무리 노력해도 깨뜨릴 수 없는 ‘숙명’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이런 점을 대조하여 논하면 되겠습니다.

■ 문제3

제시문(4)의 <표 2>에서 유형Ⅰ과 Ⅳ의 특징을 각각 설명하고, 두 유형 간의 차이에 내포된 의미를 해석한 다음, 한국사회의 불신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술하라는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 1과 친구나 친척보다 모르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2에 대해 유형Ⅰ는 둘 다 ‘아니요’로, 유형Ⅳ는 둘 다 ‘예’로 답하고 있습니다. 질문1은 제시문(2)에서 나온 신뢰사회와 불신사회 중 우리 사회가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질문2는 제시문(1)에 제시된 대면집단의 신뢰 유형인 두터운 신뢰와 2차 집단의 신뢰 유형인 얇은 신뢰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Ⅰ 유형의 특수화된 신뢰는 우리 사회를 불신사회로 믿고 두터운 신뢰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Ⅳ 유형의 일반화된 신뢰는 우리 사회를 신뢰사회로 생각하고 얇은 신뢰를 따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표 2>를 통해 두 유형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표 2>는 신뢰와 소득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으로 각 신뢰 유형이 나타나는 분포를 소득 수준에 따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신뢰라는 문제가 단지 ‘인간 관계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소득 수준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으로, ‘인간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이 점에서 우리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재미있는’ 문제일 것 같습니다. <표 2>에서 Ⅰ 유형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는 소득 계층은 중층, 하층, 최하층인데, 이 중에서도 하층이 가장 높습니다. 반면 Ⅳ 유형이 높게 나타나는 계층은 중층, 상층, 최상층인데, 이 중에서도 상층이 가장 높습니다. 즉 Ⅰ 유형과 Ⅳ 유형의 서로 다른 특징은 그러한 유형이 나타나는 계층이 대조된다는 것인 바, Ⅰ 유형은 중층 이하에서 많이 나타나는 반면, Ⅳ 유형은 중층 이상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물음, 즉 이러한 차이에 내포된 의미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제시문(2)에 따르면, 신뢰사회에서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증가하고, 불신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래 비용이 증가되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일반화된 신뢰를 보여 주는 계층이 주로 중층 이상에서 나타나고, 특수화된 신뢰를 보여 주는 계층이 주로 중층 이하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제시문(2)의 내용과 연관해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남에 대한 의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것이 문제가 되어 소득 수준이 낮아졌다 혹은 소득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만큼 남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됐다 둘 중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일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그 상호 관련성을 논할 수는 있습니다.

끝으로, ‘한국 사회의 불신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보겠습니다. 한국 사회의 불신은 흔히 ‘연고주의’와 ‘계층 간 불신’으로 나타납니다. 연고주의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폐쇄적인 집단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계층 간 불신은 상류층에 대한 일반화된 불신으로 나타납니다. 노사 문제에서 노측과 사측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도 계층 간 불신의 하나겠지요. 제시문(1)을 보면, 이 두 가지 불신 양상은 모두 ‘두터운 신뢰’에 속합니다. (1)에 따르면, ‘두터운 신뢰’는 ‘소규모 공동체’나 ‘동일한 계급’에서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즉 한국 사회의 불신의 특징은 ‘두터운 신뢰’가 매우 강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신 문제에 대한 극복 방안은 (1)의 ‘추상적 신뢰’를 기초로, 나아가 추상적 신뢰의 바탕이 되는 ‘교육’과 ‘대중매체’를 기초로 논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시민정신과 협력을 가르치고,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의 행동의 수준과 소양 등을 상향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두터운 신뢰가 만연한 양상을 극복하고, 추상적 신뢰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윤형민 스카이에듀 논술원 부소장

▼ 2008학년도 연세대 인문계 정시 논술 해설▼

(정시 문제는 연세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평이한 주제… 막상 풀어 쓰려면 아리송

2008학년도 연세대 정시 논술 인문계 문제는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주제로 했습니다. 이 주제는 이화여대 2006학년도 수시 2학기 논술과 동국대 2007학년도 수시 2학기 논술에서 비슷하게 다룬 바 있어서, 수험생들도 상당히 익숙하게 여겼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당시 이화여대와 동국대는 제시문에서 민족에 관한 이론을 크게 두 가지로 소개했지요.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종족적 모델’과 민족을 상상공동체로 보는 근대의 ‘시민적 모델’이 그것입니다.

연세대 정시 논술 문제에는 두 가지가 아닌, 세 가지 이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민족을 가족의 핏줄처럼 본래 주어진 것으로 보는 ‘근원주의’, 민족이란 개념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상황주의’, 민족은 언어, 종교, 관습, 집단의 운명에 대한 공통 관념 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문화주의’가 그것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주제가 익숙하니까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논제를 풀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쏭달쏭하고 아리송한 측면이 많습니다.

예전의 어떤 논술 문제를 보면, 지나치게 난잡한 제시문이나,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을 주제나 난이도의 제시문을 낼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세대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제도 익숙하고, 제시문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섬세한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올해 연세대 정시 논술 인문계 문제는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을 뿐만 아니라, 평가의 변별력도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시문은 4개로 각 제시문의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난이도 역시 높지 않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제시문은 최근의 논술 흐름에 따라 표가 등장했습니다. 문제는 전부 3개인데요, 세 번째 문제는 표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글자 수는 문제1과 2가 각각 800자 내외, 문제3은 1000자 내외입니다. 시험 시간은 3시간이었습니다. 고려대가 같은 시간에 1800자 내외를 쓰도록 한 것에 비해 연세대는 2600자를 요구해 학생들에게 다소 부담이 되었습니다.

■ 문제1

제시문(나)와 (다)를 통해서 제시문(가)의 밑줄 친 부분이 타당한지를 따지는 문제입니다. 이념적으로 구분해서 볼 때, (나)는 우파의 글이고, (다)는 좌파의 글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우파와 좌파의 관점에서 (가)의 밑줄 친 부분, 즉 ‘집단의 운명에 대한 공통 관념’을 민족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문화주의’의 타당성을 논하라는 문제입니다.

제시문(나)의 필자는 민족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공산주의자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팔아서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므로, 그들과는 같은 민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나)에 따르면 공산주의에 반대하느냐, 아니냐가 곧 민족의 운명을 ‘자유의 길’로 이끄느냐, ‘노예의 길’로 이끄느냐의 문제이므로 두 집단 간에는 ‘공통 관념’이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제시문(다)의 필자는 자본가와 중산계급이 주도하는 물산장려운동이 민족이라는 외피를 쓰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민족보다는 계급이 우선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족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나)와 달리 (다)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즉 (나)의 관점에서 볼 때, (가)의 ‘문화주의’가 말하는 ‘공통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공통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만적인 논리일 뿐입니다. 따라서 (가)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와 (다)가 공통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으로, (가)에서 말하는 ‘공통 관념’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것으로 이념과 계급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민족에 대한 의미 부여인 바, 민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나)와 달리 (다)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나)에서는 하나의 근거로, (다)에서는 두 개의 근거로 논증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문제2

(가)에 나온 세 가지 관점 가운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한 가지를 적용하여 현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논하고, 아울러 그 근거와 한계를 서술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근원주의’의 관점에서는 한국인들이 피부나 머리카락 색 등 인종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같은 혈통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아직도 ‘배달민족’,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우리 민족의식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우리말도 모르고, 한국인이라는 의식도 없는 재외동포 3세까지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재외동포 3세를 같은 민족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서적 동질감이 전혀 없으니까 말입니다. 덧붙여 근원주의가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국제결혼도 많아지는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과연 적합한 것인가 하는 점도 논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근원주의는 ‘이제까지의’ 관점은 될 수 있었겠지만, ‘이제부터의’ 관점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상황주의’는 민족 정체성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인식, 태도, 감정의 문제로 보는 관점입니다. 민족 정체성이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 ‘정치 사회적 목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지요. 이 관점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혹은 지금은 아니라 해도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가 수십 년 더 이어진다면, 이질감이 더 심해져서 남과 북을 같은 한민족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면서 적대시하는 마당에 핏줄이 어떻고, 피부색이 어떻고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주장도 문제는 있습니다. 민족 정체성이 ‘이해관계’나 ‘정치 사회적 목표’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 사회 안의 보수와 진보, 고용자와 노동자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해관계도 다르고, 정치 사회적 목표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자신의 정치 사회적 목표를 바꾼 사람들은 같은 민족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이처럼 ‘상황주의’는 민족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보게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문화주의’는 민족이 종교, 관습, 언어, 집단의 운명에 대한 공통 관념 등 문화적인 측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말도 모르고 우리 고유의 관습에도 별관심이 없는 재미동포는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근원주의’의 약점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 ‘상황주의’처럼 지나치게 가변적이지도 않습니다. 관습과 언어는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읽고 똑같이 분개한다거나 ‘한강의 기적’을 생각하며 함께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많았지요. 관습과 언어는 달랐지만, 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신음하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강한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이었지만 우리 민족에 대해 운명 공동체의 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일까요? 친일파는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 민족에 대한 운명 공동체의 관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 민족이 아닌가요? 이처럼 관습, 언어, 집단의 운명에 대한 공통 관념 등을 민족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문화주의’는 해당 요소 간에 불일치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 문제3

(가)와 (나)를 활용해서 표(라)를 분석하라는 문제인데요. 여기에는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쪽이 민족의식이 강하다고 가정하고’라는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표에는 한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자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미국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깝게 여기는 나라가 북한이지요. 이는 상황주의적 관점이 강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민족의식이 강하건 약하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을 바라볼 때 근원주의보다는 상황주의적 관점을 강하게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양자가 동일하지요.

그런데 차이도 있습니다. ‘자랑스럽다’와 ‘자랑스럽지 않다’를 택한 두 집단이 모두 북한을 두 번째로 가깝게 느끼고 있으나, 그 비율이 다른 것이지요. ‘자랑스럽다’의 경우 32%고, ‘자랑스럽지 않다’의 경우 19%입니다. 이는 ‘자랑스럽다’ 집단, 즉 민족의식이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보다 근원주의적 관점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민족의식의 강함과 약함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 사람은 민족에 대해 근원주의적 관점보다는 상황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데,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근원주의 관점에서 민족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한 것이지요.

이현 스카이에듀 논술원 대표

2008 대입논술 해설 easynonsul.com 및 스카이에듀 홈페이지(www.skyedu.com)에 풀이 및 동영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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