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영 박사의 신나는 책읽기]독서진단 ‘독서이력서’

  • 입력 2008년 2월 19일 02시 59분


“아이가 책을 안 읽어요.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게 될까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모든 약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필요하지 않듯 책도 마찬가지다. 대상에게 맞아야 그 효능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책을 싫어하는 아이인지, 좋아하는 아이인지, 만화만 읽는지, 과학책만 읽는지에 따라 좋은 책이 따로 있다. 얼렁뚱땅 읽거나 대충 읽는 아이를 위한 책과 생각하며 정독하는 아이에게 읽힐 책이 따로 있고, 마음이 들뜬 아이와 차분한 아이에게 권할 책도 다르다.

○자녀의 독서이력서를 보셨나요?

책 좋아하는 자녀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녀의 독서이력서를 검토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먼저 진찰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독서교육을 시작하려면 그동안 읽은 책의 양과 종류, 읽는 스타일을 알아봐야 한다.

이력서가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보여주듯 독서이력서는 그 사람이 이제까지 읽어온 책의 내용과 읽기 방법을 보여준다. 즉, 독서이력서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보이고, 가치관이 보이고, 꿈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다. 그동안 엄마가 아이에게 어떻게 독서 지도를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1년 동안 올바른 독서지도를 하려면 연초나 학기 초에 반드시 아이의 독서이력서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읽은 책은 아이의 두뇌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가 앞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아이들이 읽은 책은 그 아이의 배경지식이자 정신적인 지도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과학도 사람의 두뇌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첨단 의학기기로 세포의 조직이나 움직임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독서이력서를 보면 그런 것들이 환히 보인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은 아이의 두뇌 속에는 ‘인종문제’에 대한 기본 개념이 들어 있다. ‘홍길동전’을 읽은 아이는 ‘계급사회’의 병폐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미운 오리 새끼’를 본 아이는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독서이력서 쓰는 법과 해석 하는법

자녀에게 종이를 주고 이제까지 읽은 책의 이름을 다 써보게 한다. 그 다음에는 책 이름 옆에다 주인공의 이름, 이야기의 내용을 한 문장 정도 적게 한다.

독서이력서는 자녀 혼자서 작성하게 한다. 누가 옆에서 참견하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자녀가 독서이력서를 다 쓰고 났을 때 금세 아이 앞에서 보기보다는 아이가 없을 때 읽어보는 것이 더 좋다. 부모의 실망스러운 표정이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미칠 영향 때문이다. 먼저 자녀가 책 이름을 몇 권이나 썼는지 세어본다. 그곳에 쓰인 책들이 자녀가 기억하는 책들이다. 읽었지만, 이름을 쓰지 못한 책은 얼렁뚱땅 읽어서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책이다. 즉, 눈으로는 읽었어도 두뇌로는 읽지 않은 책이다. 어머니가 양에 집착해 독서를 시켰을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 번째로 무슨 책, 어떤 장르의 책 이름이 많은지 찾아본다. 위인전? 세계명작? 전래문학? 역사물? 순수문학? 명랑물? 마법판타지? 하이틴 로맨스? 폭력물?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아이의 정신과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때 많은 부모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떤 부모들은 당장 아이를 불러 야단치기도 한다. 그러나 독서이력서를 가지고 야단치면 독서가 시험처럼 느껴지게 된다.

세 번째로 책의 이름은 썼는데 주인공이나 내용을 쓰지 못한 책의 수를 세어본다. 책 이름, 주인공 이름, 내용의 비율이 1:1:1이라면 무척 꼼꼼히 읽고, 재미있게 읽고, 생각하며 읽는 고급 독자다. 하지만 책과 주인공에 비해 내용의 비율이 떨어지면 대충대충 읽는 스타일이다. 이런 습관이 계속되면 교과서도 대충대충, 시험지도 대충대충 읽게 돼 학업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 나는 어떤 부모일까

가장 많은 유형은 ‘잔소리형’ 엄마다. 자신은 책을 읽지 않고 “읽어라, 읽어라”고 반복하는 엄마들이다. 이럴 때 아이들은 엄마가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더 책을 읽지 않는다. 잔소리보다는 엄마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이 ‘떠서 먹여주는’ 스타일이다. 일주일에 6, 7권씩 양 위주로 독서를 권하는 엄마들이다. 자녀는 아마도 얼렁뚱땅 읽기, 대충대충 읽기, 줄거리만 읽기가 습관이 된 저급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생각하며 읽기를 권해야 고급 독자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속상해형’ 엄마다. 자녀가 위인전이 아닌 책을 읽으면 무조건 속상해하는 엄마들이다. 속상하지만 아이에게 내색하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마음에 안 드는 그 가치관의 색깔을 아주 없앨 수는 없지만 흐려지게 할 수는 있다. 좋은 책을 골라서 읽히면 품위 있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책 읽는 대가로 돈을 주는 ‘현금형’ 엄마가 의외로 많다.

아이를 위한 격려는 돈보다 책 선물이 최고다. 엄마와 아이 모두 품위를 잃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mynam@kredl.co.kr

독서이력서를 빛나게 하는 책들

○ 에이브러햄 링컨

○ 헬렌 켈러

○ 빨간머리 앤

○ 톰 아저씨의 오두막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로빈슨 크루소

○ 안네의 일기

○ 오세암

○ 허생전

○ 박씨전

○ 난중일기

○ 파브르 곤충기

○ 아라비안 나이트

○ 나무를 심는 사람

○ 노먼 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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