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태안 봉사 썰물… 상처 아물려면 멀었는데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6분


최근 들어 충남도와 태안군의 기름방제 자원봉사 접수창구에는 “아직도 자원봉사가 필요하냐”는 문의가 많아졌다.

송년회나 종무식, 시무식을 태안에서의 자원봉사로 대체하면서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달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창구 직원들은 “그럼요. 꼭 와 주세요”라고 신신당부한다. 하루 4만 명을 넘기기도 했던 자원봉사자가 6000여 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기름을 뒤집어썼던 해안이 손을 맞잡은 인간의 물결 덕분에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는 보도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도와 군 관계자들은 여긴다. 생계비 지급을 둘러싼 주민 간의 극심한 갈등도 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걱정한다.

태안군 관계자는 “일당을 받는 방제작업 물량이 줄어 일부 주민이 자원봉사를 막은 영향도 있을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사정은 다르다. 태안을 비롯해 피해지역 6개 시군은 자원봉사자를 더 절실히 원한다. 눈에 보이는 기름 제거가 마무리된 지금부터가 정성어린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방제조합, 충남도와 태안군은 20일 열린 대책회의에서 여름에 해수욕장이 정상적으로 문을 열도록 3월을 집중적인 해안방제 기간으로 정했다.

얼마 전까지 “2월까지 자원봉사자의 힘을 빌려 해안 방제를 마친 뒤 3월부터는 방제업체를 동원한 전문 방제로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해경도 견해를 바꿔 찬성했다.

해안의 백사장을 파면 아직도 기름이 묻어 나온다. 바위를 젖히면 기름이 둥둥 떠다닌다. 주민과 자원봉사자는 물론 군과 해경의 접근도 어려운 암벽 해안이나 무인도도 많다.

연안에 가라앉았거나 해안에 붙어있던 기름덩어리는 날씨가 풀리면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방제작업 못지않게, 아니 더욱 중요한 점은 자원봉사자의 손길과 발길 자체가 절망에 빠진 주민에게 큰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기재 태안군 재난관리과장은 “자원봉사자가 줄자 주민들이 허전함과 허탈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을 찾아 기름을 제거해도 좋다. 주변 관광지를 찾아도 좋다. 서해안 먹을거리를 장바구니에 담아도 좋다. 직접 찾아오기 어렵다면 태안 주민을 위한 관심만이라도 간직하자. 고사리손부터 노인까지 연인원 100만 명이 시커먼 바다를 푸르게 만들었다. 기적은 계속돼야 한다.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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