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특정인 겨냥한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
검찰수사와 별차이 없는 결과… ‘특검 무용론’ 제기
“아무리 철저히 수사해도 국민 절반은 믿어주질 않을 것 같다.”
20일 오후 늦게 서울 강남구 역삼동 정호영 특별검사 사무실 근처 한 호프집에서 특검 수사팀 10여 명은 맥주를 마시면서 이같이 토로했다. 정호영 특검이 수사 기간 중 금주령을 내린 것을 감안할 때 이 술자리는 사실상의 ‘해단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수사관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설날을 제외하고 매일 밤늦게까지 고생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일부 정치권에서 특검팀이 17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방문 조사하면서 꼬리곰탕을 먹으며 3시간 남짓 조사한 것을 두고 마치 ‘면죄부’를 줬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데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사실을 따져보기보다는 이 당선인에 대한 지지 여부로 수사 결과를 미리 재단하는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BBK 특검 수사는 수사 시작 전부터 정략적 접근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대선의 이해관계에 얽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며 BBK특검법으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특검법의 위헌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이 당선인의 취임을 고려한 최장 40일의 짧은 수사 기간 역시 특검팀의 태생적 한계였다. 특검을 통해 설령 이 당선인의 혐의가 드러난다 해도 25일 취임 후에는 현직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검찰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한 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기소해도 재판부 구성조차 어렵다는 상황을 알면서 특검을 만들었다”며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이 고려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한계 속에서 특검팀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헌법재판소가 특검법 중 동행명령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참고인 소환조차 여의치 않게 된 것.
이에 따라 특검팀은 핵심 참고인 한 명 한 명을 집중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검찰 수사 때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던 김재정 씨는 당초 특검의 소환 조사에 한 차례만 응할 계획이었으나 특검의 집요한 설득으로 자진해서 2차례 더 출두했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하면서도 “누워서라도 조사를 받겠다”며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것이다.
특검팀은 38일 동안 김 씨를 비롯해 139명을 206회에 걸쳐 조사했다. 8만 쪽에 달하는 검찰 수사기록을 비롯해 △계좌추적 기록 36권 △금융분석자료 28권 △회계감사조서 40권 등 각종 증거물도 검토했다. ㈜다스 경주본사 등 총 25곳을 압수수색해 증거물을 보강했다.
김경준 씨와 에리카 김 씨에 대한 미국 재판기록 및 미 연방수사국(FBI) 자료를 입수해 한국과 미국의 재판에서 김 씨가 다르게 진술한 점과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혐의도 확인했다.
특검이 21일 발표한 수사 결과가 지난해 검찰 수사 때와 거의 차이가 없이 나오자 “국가 예산만 낭비한 이런 식의 특검을 뭐하러 하느냐”는 ‘특검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철 특검보는 “특검 무용론은 특검을 만든 사람에게 말하라”며 “우리는 명예를 걸고 진실을 확인해서 발표할 뿐이지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