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측 “비자금 아니다”… 교수는 답변 피해
노태우 정부 시절 ‘실세’ 정무장관이었던 박철언(사진) 씨와 40대 여교수 간 고소 사건이 많은 이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박 씨 측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이 160억 원 정도가 되는데다가 상대편이 대학 무용과 여교수이기 때문이다.
박 씨 측은 “돈은 연구소와 포럼의 운영기금이고 여교수는 포럼 이사로 참여하면서 알게 된 사이”라고 해명했지만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경찰서와 박 씨 측에 따르면 서울 모 대학 무용학과 K 교수는 1998년 박 씨가 이사장인 ‘포럼21 한일미래구상’의 문화 분야 이사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이때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K 교수는 1980년대 초반 지방대 무용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 2곳을 다니며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럼 참여 당시 젊고 능력 있는 무용가로 작품 활동이 활발했다.
‘포럼21’의 이사가 된 K 교수가 “은행에 아는 사람이 있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권유했고 박 씨 측은 운영기금 일부를 맡겼다. K 교수가 은행에 갔다 올 때마다 통장에는 통상적인 예금 금리보다 높은 이자가 꼬박꼬박 기재됐다.
박 씨 측은 “신분이 확실한 만큼 신뢰가 깊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통장 거래내역 자체가 대부분 허위여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박 씨 측에 따르면 가정형편이 평범했던 K 교수의 생활은 2000년을 전후해 고가의 명품을 사용하는 등 씀씀이가 컸다고 한다.
2004년 4월경에는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귀금속과 현금이 든 명품 핸드백을 도난당했다가 찾았다.
박 씨 측은 K 교수가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이 돈은 K 교수의 가족에게도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박 씨의 한 측근은 “두 사람은 포럼을 통해 처음 만난 것이 확실하다. 당시 상황에서는 K 교수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돈이 정말 비자금이라면 (박 씨와 사이가 안 좋았던) 김영삼 정부 당시 사법기관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돈을 찾기 위해 고소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이 돈은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와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공소시효(10년)를 모두 넘긴 상태다. 경찰은 일단 횡령 여부를 규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K 교수는 지난해 8월 학교에 휴직계를 낸 뒤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가족들도 정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어 거액의 고소 사건을 둘러싼 의문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