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이 학교의 학생은 27명뿐. 2000년대 초반 남강댐이 완공되자 수몰지역 주민들은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시설은 도시 학교 못지않다. 각 교실에는 대형 TV가 한 대씩 있고 인근에 문화시설이 없어 2층 도서실에는 노래방 기기까지 들여놓았다.
그러나 교육 여건은 여전히 낙후돼 있었다. 2년 전부터 이 학교에선 졸업식이 사라졌다. 6학년이 되면 학생들이 진주 시내 중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전학을 갈 정도였다.
이 같은 한평초교에 변화의 불씨를 댕긴 것은 지난해 여름 발령을 받아 온 3학년 담임 임수정(24) 교사.
거처를 학교 앞으로 옮긴 임 교사는 지난해 10월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주 화∼목요일 오후 7시 반부터 9시까지 ‘반딧불 교실’을 열었다. 신문기사 책 영화를 통해 글짓기 토론 등을 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마을 주민의 참여도 이끌어 냈다. 다만 아이들의 학구열을 뒷받침해 줄 책이 별로 없었다.
임 교사는 본보, 네이버와 함께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을 벌이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에 편지를 썼다. 얼마 후 임 교사의 소망이 이뤄졌다. ‘작은 도서관…’은 한평초교에 어린이 책과 성인 책 2609권을 전달했다. ‘학교 마을 도서관’으로는 101번째다.
지난달 28일 열린 도서관 개관식에서 주민들은 들떠 있었다. 진주교육청 김상섭 교육장은 축사에서 “어른들 말씀에 딸꾹질 소리, 아기 울음소리,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며 “도서관을 통해 독서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개관식에 앞서 오후 1시부터 ‘하제독서치료연구소’의 김경선 소장이 특별 강연을 했다. 학생과 학부모, 동네 노인, 다른 마을의 교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김 소장은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동화책을 펴들었다.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눈을 감을 때까지라고 해요.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려면 먼저 동화책부터 읽으세요.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만큼 좋은 사랑방이 어디 있겠어요. 오늘부터 작은 독서 모임을 하나 만들어 보세요.”(김 소장)
강연에 참여한 2학년 윤석민 군의 어머니 최정희(35) 씨는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를 읽고 독후감을 썼다. 이 책은 마을 도서관이 생긴 뒤 최 씨가 처음 빌린 책. 최 씨는 독후감에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도서관이 나를 비롯한 주민들의 생활에 단 1%라도 변화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 씨의 글은 이날 열린 ‘2008 한평마을 도서관 개관 기념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진주=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