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창조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유배지
다산과 추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뜨거운 현장인 유배지! 우리는 유배지를 조선조 500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을 감금시킨 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지식인들은 굴하지 않고 시(是)와 비(非)를 논고한다. 이 책은 유배지에서의 정약용, 허균, 조광조, 윤선도, 김정희의 창조적 삶을 다룬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적 집념에 생명을 거는 치열한 정신을 만난다. 바로 유배지가 갖는 이면이다. 다음의 글을 논술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자.
(가) 다산은 이 무렵의 심정을 ‘내가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세상 일이 바빠 학문에 전념치 못하다가, 바닷가로 유배되어 이제야 공부할 시간을 얻었다. 나는 한 나라 이래 명청까지의 학설 중 경전을 연구하여 그른 것을 바르게 고쳐 새로운 학설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너무 오래 앉아서 글을 썼기 때문에 종당에는 엉덩이가 곪아터져 앉을 수가 없게 되자 벽에 선반을 만들고 서서 저술을 하였다. (65쪽)
(나) 이 무렵 추사는 그의 절품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세한도에 그려진 초가는 마치 그의 쓸쓸한 적소를 연상케도 하려니와 추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무렵 추사는 서법을 체득하는 데 더욱 정진하였다. 그가 서법에 성도한 것은 금석학에 대한 연구가 크게 뒷받침을 해주었다. 금석학의 연구와 함께 서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이다. (331쪽)
다산과 추사는 유배지에서 창조적 정열로 고통을 승화시켰다. (가)는 다산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벽파의 공격을 받아 강진에 유배된 고통을 저술 작업을 통해 극복하는 내용을 다룬다. 다산의 유배지에서 학문에 대한 집념은 오히려 희망을 만들어 낸다. (나)는 추사의 제주도 유배 중에 완성된 걸작인 ‘세한도’의 의미를 다룬다. 추사의 세한도는 잘못된 역사를 단죄하는 그의 지조를 드러낸다. 우리는 다산과 추사의 이런 모습들을 통해 역사에 대한 정신적 고뇌를 느낀다.
이와 같은 내용과 해석을 바탕으로 논술 문제를 스스로 만들고 답안까지 작성해 보자.
① ‘(가)와 (나)의 공통점을 밝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란 문제를 생각해 보자. (가)와 (나)는 조선조 지식인들이 유배지에서 오히려 창조적 정신의 세계를 이뤄낸 사실을 제시한다. 다산과 추사는 절망을 절망으로 끝내지 않고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한 인간적 승리를 보여준다. 다산과 추사가 유배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이름은 오늘날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억압의 공간일지라도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자기만의 학문과 예술에 생명을 거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② ‘(가)와 (나)에서 유배지(流配地)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와 유사한 오늘날의 상황을 사례로 들어 그 의미를 설명하시오’란 논제를 만들어 보자. 다산과 추사는 유배지라는 고통의 공간을 열정과 지조를 통해 창조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 유배의 공간은 어디든 존재한다. 몸은 비록 사회의 한가운데에 있을지라도 역사와 사회로부터 고립된 지식인이라면 그가 몸담고 있는 삶의 공간은 정신적 유배지가 된다. 또한 과거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던 사람들이 겪었던 감옥 생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지식인은 언제나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유배의 절망을 이겨내고 유배지를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후대에 길이 남을 걸작을 남긴 다산과 추사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이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어쩌면 오늘날 모든 사람은 정신적인 유배자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그 절망의 순간을 자기완성이라는 창조적인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만의 삶을 완성하는 기회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