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8학년도 동국대 수시 2학기 자연계 논술 문항 3번 논제와 이 논제에 대한 학생의 답안이다. ▶문제 전문은 동국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모호한 표현은 없을까…” 내가 쓴 글 다시 보자
[논제]
화석연료를 연소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바이오매스를 에너지로 이용할 때에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바이오에너지 사용이 화석연료 사용에 비해 보다 친환경적인 이유를 제시문에 근거하여 서술하시오.
[논제 해결을 위한 배경지식]
‘바이오매스’는 생물을 의미하는 ‘bio-’와 질량이나 덩어리를 의미하는 ‘mass’의 합성어로, 생물체와 생물체로부터 유래된 물질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생태피라미드의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 바이오매스의 대부분은 식물이다. 바이오매스는 실생활에서 바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거나 알코올 등 대체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가공된다. 바이오매스를 연료로 하여 얻어지는 에너지를 ‘바이오에너지’라고 한다. 가령 동남아시아에서는 소의 배설물을 말렸다가 조리나 군불이 필요할 때 사용한다.
[학생 답안]
바이오에너지의 사용을 친환경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①이산화탄소의 순환 때문이다. ②화석연료로부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는 달리 바이오매스로부터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③생태계의 순환을 거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④바이오에너지의 사용으로 자원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다. ⑤바이오매스는 그 사용의 한도가 광범위하므로 ⑥자원을 차지하려는 과도한 경쟁을 완화시켜 ⑦자원의 지나친 개발과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매스에는 각종 생물 유래 배설물들이 포함되는데 ⑧이러한 폐기물들을 재활용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차적 오염을 예방할 수 있다.
[첨삭]
○ 모호한 표현을 쓰고도 깨닫지 못해
이 답안에서 학생이 제시한 근거는 ①, ④, ⑧ 세 가지다. 그러나 이 세 문장이 모두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명료한 문장 구성은 논술의 생명과도 같다. 불확실한 논지나 근거로는 결코 상대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학생이 자신이 쓴 글을 꼼꼼히 되짚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④번 문장은 바이오에너지를 사용하면 자원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한계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아 모호한 서술이 되었다. ④번 문장은 소주제문의 기능을 해야 하는데, 무슨 의도를 담고 있는지 아리송한 것이다. 쉽게 말하겠다. 소주제문만 남기고 다른 문장을 삭제하더라도 학생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 비논리적인 논의는 구걸과 다를 바 없어
이번에는 근거 ①번 문장에 숨어 있는 논리적인 결함을 찾아보자. 위의 답안에서 학생은 생태계로 유입되는 이산화탄소와 생태계로 유입되지 않는 이산화탄소가 있으며, 바이오에너지를 사용할 때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는 생태계로 유입되어 생태계의 한 구성요소가 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전제(p)는 ‘생태계의 구성요소가 되면’이고, 결론 (q)은 ‘친환경적이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증은 결코 참일 수 없다. 이산화탄소가 생태계로 유입된 뒤 구성원의 건강을 해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데다, 생태계의 구성요소가 아닌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함을 극복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한 예를 통해 생각해 보자.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문장은 근거 ①을 논리적으로 만들어준다. 아래 그림의 논증구조는 다섯 개의 문장이 각각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보여준다.
ⓑ 탄소는 생태계 내에서 순환되며 대기 중에서는 이산화탄소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생태계의 총탄소량에 의해 결정된다.
ⓒ 따라서 생태계의 총탄소량을 낮추는 노력은 친환경적이라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화석에너지는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채굴되어 사용될 때마다 생태계의 총탄소량을 증가시킨다. 반면 바이오매스는 생태계의 일부이며 바이오에너지의 사용은 총탄소량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 그러므로 바이오에너지의 사용은 친환경적이다.
논리적 글쓰기의 기초는 같은 개념을 이용해서 두 문장을 하나로 엮는 것이다. ⓐ와 ⓑ는 ‘이산화탄소’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됐고, ⓒ와 ⓓ는 ‘총탄소량’의 개념을 통해 결론으로 발전했다. 물론 저마다의 논리 구조를 갖춘 문장을 서로 엮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글의 오류를 분석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충분히 실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연재할 ‘논리적 글쓰기’ 코너가 자연계 학생들의 논술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과학, 논술을 만나다
에너지는 보존되는데 왜 절약해야 하는가
에너지의 양과 질 개념 분리 요구… 엔트로피가 열쇠
[논제]
에너지가 이와 같이 절대적으로 보존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2008학년도 중앙대 2차 자연계 모의논술 논제 II 제시문 (가)에 서술된 질문)▶문제 전문은 중앙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의 요지는, 자동차의 연료인 가솔린은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으나 동력으로 쓰이든지 아니든지 연소하여 발생한 모든 에너지는 결국 열에너지로 전환되며 그 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시문 (나)의 요지는 이러하다. 하나의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때마다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들어 결국 무용한 에너지가 된다. 이를 ‘에너지가 흩어진다 혹은 무질서하게 된다’라고 표현하는데,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고립계의 무용한 에너지는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없다.
[논제 해설]
일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에너지는 유용한 에너지와 무용한 에너지로 나뉜다. 물론 우리가 에너지라고 하면 전자의 의미로 제한하여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동시에 에너지라는 단어만으로는 에너지에 관련된 어떤 논의를 전개하기에 부족하다.
잠시 지구의 열수지가 0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의 양과 지구가 방출하는 열의 양이 같다는 의미로서, 지구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변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총량이 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구 안에서 아기자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비유적으로 말해서, 집을 리모델링하면 은행 잔액이 줄어든다.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도 잔액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방 안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잔액이 줄지 않았다는 말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따라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는 ‘어떤 일이 진행될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서 출제자의 의도는 자명하다. 에너지의 양적 개념과 일을 할 수 있는가의 질적 개념을 서로 분리하라는 것이다. 물론 제시문에 언급된 엔트로피가 실마리다. 이제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와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가 있다고 하자.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로 바뀌는데 고립계 내에서는 그 역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러한 현상이 가능하여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생성된다면 일은 항상 가능해질 것이다.
논의를 더 확장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점이 있다. ‘유용하지 않은 에너지’,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에너지’, ‘흩어진 에너지’, ‘무질서한 에너지’가 모두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와 동치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떤 표현을 선택할 것인가? 세 번째와 네 번째가 기피 대상이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흩어졌거나 무질서한 에너지로부터 유용하지 않다고 하는 개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논증을 불완전하게 하는 개념은 사용하지 말자. 여기에 비하면 첫 번째 표현은 방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출제자의 의도는 두 번째나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학문적이며 객관성이 높은 다섯 번째를 추천한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로부터 일을 추출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해석이 빠진다면 결국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로 바뀔 수 없다’가 답안의 요지가 될 것이다. 만족할 수 있는가? 제시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이러한 답안은 개념이나 표현으로 보아 제시문을 짜깁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빠른 입자와 느린 입자가 충돌하였다고 하자. 이때 빠른 입자가 받는 반작용의 힘의 방향을 고려하면 느려지는 쪽은 빠른 입자이고, 빨라지는 쪽은 느린 입자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여기서 ‘빠르다’는 고온을 의미하며, ‘느리다’는 저온을 의미한다. 따라서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온도가 낮은 물체로만 에너지가 이동할 수 있을 뿐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고온체이든 저온체이든 방출한 열에너지의 양은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고온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낮고 저온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높다. 잠시 지구의 열수지로 돌아가면,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들은 태양이 우리에게 주는 ‘낮은 엔트로피’ 덕택이지 그냥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을 다시 떠올려보자. ‘에너지가 이와 같이 절대적으로 보존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논의로 보아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보존되는 문제와 절약해야 하는 문제는 서로 별개다. 우리가 제시할 답안의 요지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저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높은 에너지와 낮은 에너지를 단순 비교하면 엔트로피가 낮은 쪽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 그렇다면 화석에너지와 햇빛에너지 중에서 어느 것이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일까? 열쇠는 온도가 쥐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열에너지의 크기에 상관없이 고온에서 방출된 에너지의 엔트로피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화석에너지를 연소시키면 화염이 발생하는데 그 화염의 온도는 태양의 온도보다 훨씬 낮다. 따라서 햇빛에너지의 엔트로피가 화석에너지보다 낮다.
그렇다고 해서 화석연료의 장점을 간과하지 말자. 작은 질량, 작은 부피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태양전지를 이용해 같은 양의 에너지를 얻으려면 굉장히 많은 집열판이 필요하다. 태양열 자동차가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는 이유다.
[논제 확장]
이제 여러분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자 한다. 엔트로피에 관한 이러한 이해를 발판으로 논제 II 문항 4에 도전하자. 문항은 ‘위 제시문에 있는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생활쓰레기 분리수거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시오’다. 출제자의 의도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수험생이라면 ‘위 제시문에 있는 엔트로피의 관점에서’라는 부분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 흩어진 정도를 엔트로피에 대응시켜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높은 엔트로피 상태라고 말한다거나, 분리수거하면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적 표현에 불과하다. 폐지의 분리 상태에 관계없이 태웠을 때 발생하는 열에너지의 크기는 같다. 분리수거가 물질에 내재하는 에너지의 크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곳에 모으면 유용성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유용성이 낮아지고 효율을 감소시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출제자는 말한다. ‘무용한 에너지는 결국 쓰레기가 된다’라고. 쓰레기는 분명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화(無用化)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열역학 제2법칙은 무용한 에너지가 유용한 에너지로 회귀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쓰레기가 어떻게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해답은 고립계 여부에 있다. 거의 대부분의 우리 주변은 고립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열역학의 제2법칙은 어떤 금기를 선언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에너지로 회귀되는 조건이나 회귀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려주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논제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분리수거는 열린계의 엔트로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설명하시오.’
논제의 답안으로 다음을 제안한다.
백광현 ㈜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