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더 신났어요”
《제주 서귀포시 ‘말이 다녔던 길’이라는 뜻의 말질로. 잔디가 푸릇푸릇 돋아나기 시작한 14일 오후 강정초등학교 도서실에서는 이색 대청소가 벌어졌다. 새 학기를 맞아 으레 하는 환경미화가 아닌 ‘책청소’가 시작된 것이다. 》
일단 도서관의 묵은 책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진행됐다. 원래 이 학교에는 5000여 권의 책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 읽고 싶어 하는 책이 없다는 것. 학교지원비를 받아 구입한 새 책도 기존의 책에 묻혀 헌책처럼 취급됐던 게 현실이었다. 고창근 교장조차 “내가 초등학교 때 보던 산수책이 꽂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6학년 심수지 양은 “오랫동안 펴보지 않은 책뿐만 아니라 ‘…읍니다’ 식 표기의 1980년대 책도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교사들의 요청으로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은 성인도서 1000권을 포함해 총 3000권의 새 책을 지원했다. 대대적으로 벌였던 도서관 리모델링 작업이 완성된 셈이다. 이날도 도서관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새 책들을 보며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서서 책장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재테크가 최고야. ‘주식 천재가 된 홍 대리’ 읽고 주식이나 배워볼까.”
“우와, ‘마시멜로 이야기’를 여기서 보게 되네. 이 책을 얼마나 읽고 싶었다고.”
학부모들은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들고 이제야 비로소 어른을 위한 마을 도서관이 생긴 것에 뿌듯해했다. 어머니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희수(36) 씨는 “헌책과 아동도서만 있어 이곳에 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신간들을 바로 코앞에서 빌려 볼 수 있으니 앞으로 마을도서관이 주부들의 사랑방이 될 것 같다”고 반겼다.
개관식에 앞서 학부모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가령 경희대 평생교육원 교수의 특강이 열렸다. 이 교수는 “특히 쓰레기 문고로 취급됐던 학급문고부터 바꿔야 한다”며 “남 주기 아까울 정도로 좋은 책들을 학급문고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