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땅 다 파헤쳐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미아찾기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실종 아동 부모들이 전단지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모임 대표 나주봉 씨, 35년 전 실종된 아들 이정훈(당시 4세) 군을 찾는 전길자 씨, 14년 전 희영(당시 10세) 양을 잃어버린 서기원 씨. 김재명  기자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미아찾기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실종 아동 부모들이 전단지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모임 대표 나주봉 씨, 35년 전 실종된 아들 이정훈(당시 4세) 군을 찾는 전길자 씨, 14년 전 희영(당시 10세) 양을 잃어버린 서기원 씨. 김재명 기자
유괴후 ‘12시간내 해결’ 중요한데 접수 하루 지나야 수사

경찰 아동실종엔 소극적… 전담 수사기구 설치 서둘러야

■ 장기 실종 어린이 부모들 애끊는 사연

《우예슬(8) 양의 시신이 발견된 18일 경기 오산에 사는 윤봉원(45) 씨는 경기 시흥시 군자천을 찾았다. 9년 전 현장학습을 갔다 귀갓길에 실종된 그의 딸 지연이는 당시 우 양처럼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윤 씨는 경찰과 함께 군자천을 뒤지면서 “시신이 내 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느냐. 마음 같아서는 전국의 땅을 다 파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초동수사만 빨리 시작했어도…=이혜진(10) 양과 우 양의 피살 소식을 들은 실종아동 부모들은 “변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아이를 찾자고 그렇게 애원했건만…”이라며 탄식했다.

부모들은 “실종 신고를 하면 단순 가출로 취급할 게 아니라 초기에 적극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묵살한 결과”라며 경찰을 질타했다.

어린이 유괴는 12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생존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 등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없으면 신고 접수 후 24시간이 지나서야 수사한다.

이 양 등이 실종됐을 때도 신고 접수 일주일이 지나서야 앰버 경보를 발령했다.

이 때문에 실종 아동 부모는 경찰에 의지하기보다는 직접 ‘탐문수사’를 한다.

5년 전 부산 해운대에서 네 살배기 아들을 잃어버린 박혜숙(41·여) 씨는 “신고하러 갔더니 경찰은 ‘집에 가서 기다리면 곧 돌아올 것’이라며 접수도 하지 않았다”며 “이런 경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종 아동 전담팀은 언제쯤이나…=실종되는 어린이가 해마다 늘어나지만 경찰은 전담 부서를 갖추지 않고 있다.

일선 경찰서에서 실종 신고는 여성청소년계 직원 1, 2명이 맡는다. 사건은 대부분 형사계에서 수사한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 실종은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인사고과에 크게 반영되지 않아 수사에 소극적인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동 실종사건을 신고하면 연방수사국(FBI)의 아동 전문 대응팀이 수사 조언을 한다”며 “우리는 일선 지구대 경찰 등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이 초동수사를 맡아 중요한 단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3월 한 달 동안 전국의 아동 실종 사건을 재수사하는 중이다.

여덟 살짜리 막내딸을 잃어버린 강현숙(46·여) 씨는 “지난 8년 동안 하루도 대문을 잠그지 못하고 살았다. 시신이라도 발견돼 가슴에 고이 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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