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공개, 학교 서열화… 아이들 상처받을까 걱정”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성적공개는 알권리… 학생 지도에 도움”

인터넷-학원 통해 학교별 점수 알려져

7개 시도교육청이 중학교 1학년의 진단평가 성적을 공개한 21일 일선 중학교들은 ‘지역과 학교의 서열화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긴장감에 온종일 술렁였다.

사교육의 영향이 큰 영어와 수학 성적이 대도시, 특히 서울 강남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자 “사교육에 따른 격차를 공교육이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한숨 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가장 긴장한 것은 학교들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성적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거나 사설 학원 등에 알리면서 인근 학교와의 서열뿐 아니라 해당 지역 내에서의 순위까지 금세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 김모 교사는 “개인 성적표에 학교 평균점수를 굳이 기재한 시교육청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러다 중학교도 고교처럼 학교선택제 대상이 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강남구 소재 D중 이모 교사는 “이미 실재하는 지역 간 학력 편차가 드러난 것뿐”이라며 “아이들의 실력을 파악했으니 이를 토대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적이 좋은 학교들은 성적을 적극적으로 공개한 반면 저조한 학교들은 성적표를 나눠주지 않으려다 학부모들의 항의로 뒤늦게 나눠주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서 개인 성적만 알려줬고,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과목별로 만점을 받은 학생들의 명단만 공지하기도 했다. 상당수 중학교는 다음 주에 성적표를 배포하겠다며 공개를 연기했다.

학부모들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자녀와 학교의 성적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어 학습 지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를 당연시해 학습 의욕이 떨어지거나 기가 죽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녀가 성동구의 중학교에 다니는 박지원(43) 씨는 “아이가 같은 영어학원에 다니는 송파구 친구와 학교 성적을 비교하더니 창피하다고 울더라”면서 “어린 나이에 학교나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을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사교육 만능주의’를 우려하는 여론도 높았다.

광주 동구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김진환 강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다닌 아이들은 수학을 거의 다 맞았다는데 학원에 못 다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더라”면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가정 형편이나 사는 동네 때문에 위화감을 느끼고 좌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적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는 역시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각 시도교육청이 불필요한 성적 경쟁을 조장하고 학교와 학생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성적 공개에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서울자유교원조합은 “성적 공개는 학생과 학부모의 알권리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이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학력을 신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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