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청이나 구청, 군청 같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시민 대상 독서 강연회를 자주 개최하고 있다. 강의를 하다 보면 맨 앞자리에 수십 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건성으로 듣고 있는 젊은 층과 달리 공책에 메모까지 한다. 강의 끝난 뒤 질문도 많은 편이다.
이 자리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직장 때문에 올 수 없어서 나한테 듣고 오라고 했다”면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고민보다는 행복한 웃음이다.
○ 최초의 독서교육은 할머니의 ‘무릎학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래동화 읽기의 적임자는 할머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것이 어린이 교육의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교육이 현대화하면서 할머니의 무릎학교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요즘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 한 복지관에서 춤을 배우는 노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조부모는 15%도 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손자들과 같이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같이 사는 조부모 중에서는 그 이유로 손자들이 학원 다니기에 바빠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없거나 텔레비전·게임 때문에 조부모와 교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 조부모와 손자의 윈윈 작전
하지만 손자를 위한 조부모의 독서교육은 매우 효과가 높다.
이는 조부모가 아이들에게 부모 다음으로 가까운 생물학적 존재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느끼는 감지력이 강해 이해가 빨라지는 등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가 쉽다. 또, 조부모의 장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긴장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부모는 아이의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준다. 부모라면 ‘펄펄’ 뛸 일도 조부모는 ‘씩’ 웃고 넘어간다. 그래서 부모들은 조부모가 아이들 버릇을 나쁘게 한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더 폭넓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조부모의 너그러운 시선으로 읽어주는 책 이야기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다.
그런데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조부모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신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구식도 필요하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는 10세 미만의 아이일수록 구식과 신식이 골고루 필요하다. 신식만 보고 자란 아이들은 뿌리 없는 부초처럼 부유하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 조부모는 전래동화와 위인전 교육의 적임자
조부모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독서교육이다. 영어나 수학교육이야 젊은이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독서교육만큼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 독서교육 중에서도 전래동화와 전래동요, 신화 이야기, 위인전은 특히 그렇다.
이 같은 책들은 젊은 부모가 들려주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 즉, 어설픈 분장을 하고 보여주는 연극이 아니라 진짜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를 보는 것처럼 아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폭 빠져들게 할 수 있다.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부담 없이 들려주는 조부모의 구수한 옛날이야기야말로 어린 시절에 꼭 경험해야 할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조부모의 이야기가 튼튼한 아이를 만든다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가치관이 튼튼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옛날이야기와 신화, 위인전 등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옛 사람들의 삶을 충분히 엿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하는 교육의 장점은 가족의 역사를 전해준다는 점이다.
“네 아빠는 아주 개구쟁이였지.”
“네 엄마는 울보였단다.”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신비한 사건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아이들은 누구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조부모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기쁨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조부모들은 주저하지 말고 다락방에 보관된 아들의 일기장과 어린이날 딸이 보낸 편지를 아이들과 보면서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이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다.
인생이란 지나고 보면 정답이 없다. 부모의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교육과 조부모의 너그럽고 전통적인 교육이 어우러진다면 아이는 그 속에서 자기 인생에 필요한 진실을 골라 가질 것이다. 북데기 속에서 알곡을 골라 먹는 병아리들처럼.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mynam@kred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