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2008 대입논술 해설

  • 입력 2008년 3월 31일 02시 57분


2008학년도 한국외국어대 정시논술 해설

(문제는 한국외국어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제시문-사례 관통 키워드 찾아내야

이번에는 한국외국어대 정시논술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외국어대 논술의 특징은 문제가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 원리를 제공하는 ‘제시문’과, 다양한 분야와 스펙트럼을 가진 사례를 제시하는 ‘자료’를 통해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는 것으로 문제 풀이가 시작됩니다. 이 키워드가 한국외국어대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리와 사례의 공통 키워드를 찾는 순간 문제가 술술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 키워드를 찾기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제시문과 자료가 무려 7개나 되어 더욱 그렇지요. ‘이상하게’ 생긴 그림이 자료로 나와 있기도 해서 ‘뭐 이런 문제가 다 있어?’ 하는 생각도 들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힌트가 주어집니다. 수시와 달리 정시에서는 키워드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공통의 제시문과 자료를 바탕으로 3개의 문제가 출제됐는데, 이 중 문제 3에서 살짝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이 힌트를 찾지 못하면 세 문제 중 어느 한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헤맬 수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점수차가 매우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대학의 다문항 문제를 보면, 문제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 일부 문제라도 잘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한국외국어대 문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느 한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끝낸 학생도 많았을 것입니다.

■ 문제1

제시문과 자료 1∼5의 키워드를 찾고, 자료에 나타난 각 키워드의 특성을 설명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키워드는 ‘판단’ 혹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제시문은 환경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혹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환경은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간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때 선택의 기준은 각자의 이성적 판단이나 주관적 가치 혹은 가치관 등입니다. 여기에서 ‘판단 기준’이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는 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료 1을 보겠습니다. 키워드를 ‘판단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연결시키기 어려운 것이 자료 1의 상황입니다. 자료 1은 플라톤의 ‘국가’의 일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민주정체(民主政體·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 형태)로 변화하면 자유가 넘쳐나 무정부 사회가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유는 아테네의 질서를 무너뜨려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자유는 권위라는 판단 기준을 무너뜨려서 선생이 학생을 두려워하고, 학생은 선생을 경시하며, 젊은이들은 연장자와 맞대결하고, 노인들은 젊은이 앞에서 채신없이 행동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판단 기준’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시켜 볼 때, 자료 1은 ‘판단 기준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료 2는 ‘도코모’라는 일본 휴대전화 회사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코모는 일본 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2000년대 초반 세계 시장에 야심 차게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세계 진출에 실패합니다. 자료 2는 이 실패의 원인으로 도코모 경영진의 판단 착오를 들고 있습니다. 일본 소비자의 기준으로 외국 소비자를 판단한 것이지요. 이 회사는 일본 소비자가 선호하는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했지만 일본의 소비자와는 다른 세계 소비자의 경향을 읽어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는 ‘환경이 변화했는데 판단의 기준을 지키려다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자료 3은 루소의 ‘에밀’ 중 일부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루소는 사랑 이전에 판단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흔히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생각하지만 루소는 이 사랑 이전에 판단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사랑의 대상에 대한 판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지지만,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또,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에게서 그만큼 사랑받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상호적입니다. 상호적인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판단 기준에 부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료 4에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자주 다루는 최인훈의 ‘광장’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이명준은 공산군 장교들과 전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밀실만 존재하고 광장이 없고, 북한에는 광장만 존재하고 밀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명준은 결국 중립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자료 4는 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명준은 제3국은 남한이나 북한과 다르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공산군 장교는 중립국 역시 자본주의 나라로 보고 명준을 조국, 즉 북한으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명준에게 제3국은 중립국인 반면, 공산군 장교에게는 중립국 역시 자본주의 나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양자 간에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5는 자가용을 모는 가장이 주유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등장합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합리적인 선호도에 따라 주유소를 선택하는데, 휴가철의 경우 이 기준이 변화합니다.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떠나는 휴가철에는 아이들의 선호도에 맞춰 주유소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상품을 선물로 제공하는 주유소를 선택합니다. 즉 평소와 다른 환경의 변화로 판단 기준이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제시문은 판단의 기준을, 자료 1은 판단 기준이 소멸된 경우의 혼란을, 자료 2는 판단 기준을 고수해 생긴 실패를, 자료 3은 판단 기준의 일치를, 자료 4는 판단 기준의 불일치를, 자료 5는 판단 기준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문제2

제시문을 바탕으로 자료 2와 자료 5의 차이점 및 자료 3과 자료 4의 차이점을 묻고 있습니다. 문제 1에서 키워드를 찾았으면 문제 2는 쉽게 풀립니다.

자료 2와 자료 5는 환경이 변화된 상황에서 예전의 판단 기준을 고집하는 경우와 그것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경우입니다. 자료 2의 도코모 경영진은 자국 시장과 세계 시장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판단의 기준을 고수하다 실패합니다. 반면 자료 5의 칼텍스 주유소는 일상과 휴가철의 환경이 다름에 착안하여 판단 기준의 변화를 예상하고 적절한 대응을 통해 성공하게 됩니다.

자료 3과 자료 4는 판단 기준의 일치 여부에서 대조적입니다. 자료 3의 경우,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사랑스럽게 가꿔야 하고 상대의 기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간에 판단 기준이 일치할 때 사랑은 이루어집니다. 자료 4의 경우, 공산군 장교와 명준은 같은 대상인 중립국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공산군 장교는 중립국을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로 판단하고, 명준은 중립국을 제3국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료 3과 자료 4는 판단 기준이 일치하는 경우와 불일치하는 경우로 대비됩니다.

■ 문제3

자료 6을 통해 유추한 개념으로 자료 1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료 5의 가장의 의사결정에 대해 논하라고 합니다.

자료 6은 생산업자와 고객의 직접 연결을 그린 왼쪽 그림과 중간 상인이 개입되는 오른쪽 그림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두 그림의 차이는 중간 상인이 개입해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중간 상인이 개입한 것은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겠지요. 문제에서 요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따라야 할 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각자가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왼쪽과 달리, 오른쪽은 매개자가 있어 의견을 중재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을 위한 매개자는 양쪽 모두 정당성을 인정해야 중재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정당성이 있어야 ‘권위’가 생겨나고 정당한 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 여기까지 생각했다면 왼쪽 그림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권위적 매개자가 없는 경우로 볼 수 있고, 오른쪽 그림은 권위적 매개자가 있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문제의 요구대로 자료 1의 문제점을 찾아야겠죠. 자료 1의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판단의 기준이 사라진 경우입니다. 민주정체로 변화된 나라는 넘쳐나는 자유로 인해 필연적으로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걱정하는 문제는 권위적 정당성을 가진 매개자가 사라지는 경우이겠지요. 따라서 자료 1의 문제 상황은 ‘권위적 의사결정 주체’의 부재입니다.

자료 5의 경우에는 이 반대입니다. 휴가철에는 아이들의 선호도에 맞춰 주유소 선택의 기준도 변화합니다. 그러나 주유소를 선택하는 주체는 여전히 가장이 되겠지요. 가장의 권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은 자녀의 요구 상황을 읽어내고 그에 맞춰 주유소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여기에서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정당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현 스카이에듀 대표

2008학년도 숙명여대 인문계 정시논술 해설

(문제는 숙명여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내용 다른 두 주제 제시… 변별력 강화

2008학년도 숙명여대 정시논술은 2개의 주제에 대해서 한 주제에 2, 3개의 문제를 푸는 형태였습니다. 문제 1에서 문제 3까지가 하나의 주제고, 문제 4와 문제 5가 또 다른 하나의 주제입니다. 과거에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논술하는 유형이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숙명여대 정시논술처럼 내용이 다른 2개의 주제에 대해 논술하는 유형의 문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변별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하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A 학생이 B 학생보다 논술을 잘한다 해도, 어떤 주제가 출제되는가에 따라 B 학생이 A 학생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난의 주제만 가지고 학생의 실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요. 2개의 주제에 대해 논술하게 되면 이 같은 우연성을 줄이고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주제의 난이도 차가 꽤나 커 보입니다. 첫 번째 논제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인문학적 성찰을 주제로 하는 두 번째 논제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 문제1

요약 문제입니다. 제시문 길이도 짧고 난이도도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100자 내외로 요약하기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100자 내외라는 얘기는 결국 핵심적인 두 문장으로 전체 내용을 표현해보라는 것인데, 길게 쓰기도 어렵지만 짧게 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우니까요. 기업 경영자와 노동조합 지도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점을 한 문장으로 서술한 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된 자유시장 경제의 핵심 원리, 즉 공익을 우선시하기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더 많은 공익을 가져온다는 점을 추가하면 되겠습니다.

■ 문제2

(라)의 표에서 유독 한국 사람들이 기업가에게 더 넓은 범위의 책임, 즉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의 논지와 연결지어 설명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는 한국 사회가 성찰성이 약한 사회라고 주장합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축복이라는 고정불변의 목표를 향해 그저 빨리 뛰는 일만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서구가 산업화를 달성하는 데 100년 이상이 걸렸던 반면, 한국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양적 성장에 걸맞은 기업윤리를 갖추기는 어려웠겠지요. 따라서 지금의 기업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그렇게 정당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의심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최근 국내 몇몇 ‘국가대표급’ 대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는 모습에서도 이 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가 언급한 것처럼 한국은 아직 성찰성이 부족한 사회이고, 선진적 가치와 규범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기업가에게 ‘현재 당신들이 이룬 모든 부가 순전히 당신들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당신들은 선진국과 달리 자신의 본래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의 표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고요.

■ 문제3

(라)의 표를 보면 ‘윤리·사회 책임 경영과 이윤 창출을 절충해야 한다’는 견해가 가장 많습니다. 문제 3은 향후 한국 기업이 윤리·사회 책임 경영과 이윤 창출을 어떠한 방식으로 조화시킬지 논술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 (나), (다)의 논지를 모두 활용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가), (나), (다)를 활용하여 윤리 경영과 이윤 창출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논하는 문제입니다.

제시문 (가)는 기업가는 이윤 창출, 세금 납부, 일자리 창출 등 기업가 본래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그러면 저절로 그 행동이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어떤가요? 대기업의 탈세 행위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은 기업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책임조차 방기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가)에 따르면,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속임수나 기만행위 없이 공개적으로 자유로운 경쟁에 전념’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겠지요.

제시문 (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것입니다. 부자는 능력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는데요, 하나는 부자의 도덕성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제도적인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에 대한 것입니다. 기업에 관한 논의로 적용한다면, 기업은 전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는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지 법적, 제도적 강제를 통해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다)는 성찰성을 통한 선진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것입니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축복’만을 좇은 나머지 그 외의 가치는 방기한 이제까지의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가), (나), (다)를 종합하면, 먼저 (다)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찰의 구체적 내용이 (가)와 (나)에 나옵니다. ‘속임수나 기만행위’ 없이 자유경쟁의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경제활동 과정을 돌아봐야 하며, 경제활동 그 이상의 전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문제4

(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의 시(詩)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서술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독일인들이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인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악행을 범한다는 의식이 없었으며, 반대로 ‘정직’, ‘예절’ 등의 일상적 윤리규범을 존중하는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잔인한 악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나)는 ‘자신들에게 친숙한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중 무엇인가’일지 모른다고 의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당연한 것, 정당한 것, 나아가 윤리적인 것이라 믿고 있는 것들 중에 그러한 잔인한 악덕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강제수용소의 최고책임자 히믈러의 좌우명은 ‘무엇을 하든지 예절바르게’였다고 하지요. 아마 히믈러는 자신을 예절이 바른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스스로를 예절바른 인간으로 생각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에게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를 정당하고 윤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친숙한 사고방식’ 그 자체가 ‘잔인한 악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의 메시지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해치는 적(敵)이 우리가 좋아하는 꽃 속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꽃이란 곧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향해 윤리적으로 질타하는 ‘모나고 미운 말’, ‘서릿발 서린 말’을 모두 거부합니다. 다시 말해, (가)의 시는 ‘찬양하기 좋은 말’을 통해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우리 자신의 악한 본성을 인정하기 거부하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 문제5

(나)와 (다)에서 공통으로 얘기하고 있는 현상과 문제를 요약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라는 문제입니다. (다)의 마지막 대목은 ‘미디어’에 대한 것인데, 극복 방안과 관련해서 이 부분을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제시문 (다)도 (나)와 비슷한 취지의 글입니다.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끔찍하게도 또 전율스럽게도 정상적인’ 인간이었으며, 이를 ‘아무 생각 없이(무사유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도 자신 안에 저마다의 ‘아이히만’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나)의 끝부분에서도 나치즘이 저지른 범죄의 배후에는 ‘대다수 독일인’이 있었다고 말하지요.

따라서 공통된 현상은 미증유의 범죄가 아무런 저항이나 내부 비판 없이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자행되었다는 것이고, 공통된 문제는 악은 특별한 몇몇 악인이 독점하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실존적 구성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미디어와 반복해서 접촉하게 됩니다. (다)의 끝부분에 나오듯, 미디어는 우리를 ‘생각 없이’ 만듭니다. 정보를 주는 것도 미디어고, 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지 알려주는 것도 미디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판단의 근거를 미디어 그 자체에서 찾는 경우가 많지요. “진짜야. 신문에서 봤어” 하는 식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보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한 사고 능력의 상실이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적 사고 능력까지 약화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형민 스카이에듀 논술원 부소장

easynonsul.com 및 스카이에듀 홈페이지(www.skyedu.com)에 풀이 및 동영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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