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서 ‘흉기 위협’ 확인하고도 그냥 돌아가
늑장수사에 피해 부모가 전단지 만들어 돌려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폭행당한 뒤 납치될 뻔했으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목격자 조사도 하지 않는 등 부실 수사로 일관해 물의를 빚고 있다.
30일 경기 일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26일 오후 3시 40분경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모자를 쓴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서 이 아파트에 사는 모 초등학교 3학년 A(10) 양을 끌어내려다 실패하자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했다.
40, 50대로 추정되는 이 남자의 폭행 장면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에 그대로 담겼다. A 양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내부의 손잡이를 꼭 붙잡고 계속해 “살려 달라”고 외쳤다. A 양은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저항했으나 결국 아파트 3층에서 이 남자가 강제로 끌어냈다.
하지만 A 양의 외침을 들은 아래층 주민이 계단으로 올라오자 이 남자는 A 양을 놔둔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지 밖으로 빠져나갔다. 단지를 벗어나면서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뒤를 돌아보는 이 남자의 모습은 단지 내에 설치된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사고 직후 A 양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 인근 대화지구대 경찰관이 출동했으나 경찰은 A 양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 구조한 주민의 진술조차 듣지 않았다.
경찰은 출동 당시 CCTV 화면을 보고 화면상에서 흉기도 확인했지만 CCTV 화면을 증거물로 확보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
지구대에서 경찰서로 사건이 넘어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건 발생 다음 날 형사가 A 양 부모를 찾아와 피해 상황만 들었을 뿐 비명을 들은 주민이나 다른 목격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고, 단지 주변의 탐문수사도 하지 않았다.
A 양 부모는 경찰의 부실, 늑장 수사를 참다못해 직접 CCTV에 찍힌 용의자 얼굴이 담긴 수배 전단을 만들어 단지 주변에 붙이고 범인 검거에 나섰다.
뒤늦게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사흘이 지난) 29일 CCTV 화면을 구했다”고 밝혔으나 부실 늑장 수사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경찰은 31일 뒤늦게 일산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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