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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넘어 ‘세계 속 특별한 나라’로 가야
“한국 아직도 북핵 등 한반도문제 매몰
온난화 테러 인권 등 글로벌 이슈 소홀
국제 기여도 높여야 진정한 일류국가
영향력 극대화 위해 한미동맹도 긴요”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은 2006년 한국의 종합 국력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세계 13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세계 10위권의 국방예산,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등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까지 세계 15대 파워그룹(G15)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능동적인 기여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북한 핵문제와 동북아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역내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과 경제 안보 공동체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한국의 국제 지위 향상의 제약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을 결성해 결집된 힘을 발휘하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도 거대한 영토와 자원의 힘 등을 이용해 경제블록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동안 굳건했던 한미동맹마저 이른바 ‘좌파정권’ 집권기간에 상당 부분 약화됐다.》
▽능력을 키우고 책임을 다하라=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한국의 국가전략은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그에 수반되는 국제적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특히 한국이 한반도 이슈에만 매몰돼 지역적(parochial)이라는 인상을 탈피하고 지구 온난화, 핵 확산 방지, 인신매매나 인종청소 방지 등 ‘글로벌 이슈’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권고다.
존 울프스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전 인류가 관심을 보이는 국제적 이슈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적극 참여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평화적인 원자력 에너지 이용 기술 개발이나 국제 자연재해에 대한 구호활동 참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군사 분야에서 한국의 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후 재건과 번영 과정에서 유엔과 미국의 도움을 받았듯이 한국도 아프가니스탄, 수단 다르푸르, 콩고민주공화국 등 국제분쟁지역에서 ‘특별한 나라’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강화가 중요한 이유=한국이 일본과 중국이라는 동북아 지역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국가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강화해 미국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도 나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지역맹주’ 등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국가전략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의 강화는 한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한국이 가진 국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한미동맹은 유용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한미동맹의 강화가 여타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거나 소원하게 만드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좋은 이웃이 되라=주변국들로부터 한국의 선의(good will)를 인정받고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국제평화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 역시 한국의 ‘소프트 파워’ 강화에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인 일본을 평화국가로 재건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계획인 ‘마셜플랜’을 실행에 옮긴 것은 좋은 예라는 것.
클링너 연구원은 “한국은 침략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동북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절대적’ 국력이 강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할 때 지도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울프스털 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멤버 중 최저 수준인 4억5000만 달러에 머물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리는 한편 한국의 많은 젊은이가 평화봉사단 등 세계평화를 위한 자원봉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공공재를 제공한다는 의미=진정한 ‘일류국가’가 되려면 전 세계 인류가 원하는 국제 공공재를 한국이 제공할 역량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예를 들어 인종청소와 같은 대량학살이나 인권유린의 현장, 또는 전쟁 후 경찰력을 필요로 하는 지역에 기꺼이 참여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나서는 것이 바로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전 세계인에게 혜택을 주는 공공재를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 여부가 15대 파워 진입의 관건”이라며 “이제는 국제 공공재의 수혜자에서 제공자의 위치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D.I.M.E. 기법:
외교-정보-군사-경제 토대로 국력 평가
국제정치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외교(Diplomacy) △정보(Intelligence & Information) △군사(Military) △경제(Economy) 등 4개 요소를 평가하는 D.I.M.E. 기법을 토대로 총체적 국력을 산정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외교력과 정보력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의 확산, 청바지와 햄버거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의 전파에도 주력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전략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때 이들 4개 요소가 유기적으로 상호 보완하면서 국가경쟁력의 상승(相乘)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경우 경제력과 군사비 규모로 보면 10위권 안팎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한 외교력과 정보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美 군사 외교서 문화 외교로 EU 경제개혁 통해 활력 충전
日 저개발국과 교류 적극적 中 언어-문화까지 수출 나서▼
■ G8-브릭스… 경쟁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한국이 G15에 진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주요 선진국은 물론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 대표되는 신흥국가들까지 경쟁적으로 ‘강국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강화로 승자 입지 굳힌다=미국은 이라크전쟁 등으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해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려고 한다. 미국경쟁력위원회(CoC)는 인재 확보, 투자 확충, 인프라 정비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국가혁신이니셔티브(NII)’를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미국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스마트파워위원회’는 군사력 위주의 ‘하드 파워’보다 문화와 가치 등 ‘소프트 파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동맹 강화와 저개발국 지원 확대, 에너지 및 기후변화와 관련한 기술혁신 등을 제안했다.
‘잃어버린 10년’의 터널을 빠져 나온 일본은 노동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위기를 ‘지식정보화 강국’이라는 비전으로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외교적으로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모색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으로 협력관계를 넓히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경제개혁을 통해 ‘늙은 유럽’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영국은 지식, 창조, 혁신기반 구축을 위한 국가체질 개선을 위해 ‘기회의 나라 건설’을 국가목표로 내걸었다. 총리실 산하에 미래전략청(PMSU)을 설치해 장기적 국가비전을 수립하고 있다.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 ‘프랑스성장촉진위원회’(아탈리위원회)를 통해 규제 완화와 시장경제 강화를 핵심으로 한 국가 개혁 방안을 집대성했다.
▽21세기엔 우리가 주역=신흥국가들의 약진도 위협적이다. 신흥국가들은 세계 주요 8개국(G8)에 5개 옵서버 국가(O5·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를 포함해 G13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중국은 ‘2020년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먹고살 만한 수준) 건설, 2050년 다퉁(大同·이상적 복지사회) 진입’이라는 그랜드 디자인을 세워 놓은 지 오래다. ‘과학적 발전관’을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창신(創新)’을 바탕으로 첨단기술 경제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것.
또 국가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원조를 무기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설립한 공자학원은 벌써 세계 60여 개국, 200여 곳에 이른다.
인도는 2002년 이미 ‘비전 2020’을 수립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4위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또 ‘신(新)비동맹 실리외교’를 통해 주변 강국 사이에서 ‘협력만 있고 견제는 없는’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브라질은 유엔 밀레니엄회의를 개최하는 2015년과 브라질 건국 200주년이 되는 2022년까지 단계적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