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일이긴 하지만 경찰이 “다음부터 착용하세요”라며 계도에 그치면 운전자들은 무척 미안하고 고마운 표정이다. 범칙금 부과를 모면한 이들은 아마도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앞으로 꼭 매자. 내 안전을 위한 일이기도 한데…”라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찰이 “범칙금을 내야 한다”며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내 안전에 관한 일인데 왜 국가에서 범칙금을 물리느냐” “실적 위주의 단속 아니냐”며 거칠게 따지기 일쑤다.
이영화 대전지방경찰청장도 안전띠를 안 맸다고 범칙금까지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경 대전 동구 삼성동 인근에서 이 청장을 태운 관용차 기사가 청장 관사를 빠져나오다 의경에게 안전띠 미착용으로 적발됐다. 그러나 의경들은 청장의 ‘지도’를 받고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 일이 문제가 되자 그는 최근 “지난해 7월 대전지방경찰청 개청을 하면서부터 안전띠 미착용 단속은 계도 위주로 하라고 줄곧 지시해 왔다”고 해명했다.
이 청장은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경우 자기 생명이 위험하지만 미착용 그 자체가 직접 사고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래서 계도 위주의 단속을 지시했고 의경들이 그런 방침을 따르지 않아 타일러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대전지역에서는 1∼3월에만 7587명의 운전자가 안전띠 미착용으로 건당 3만 원씩의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받은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그동안 이 청장이 계도 위주의 단속을 지시해 왔다면 그 혜택을 본 사람은 자신을 포함한 일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청장의 방침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경찰의 지시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찰은 이제라도 이 청장의 관용차에 범칙금을 물리든지, 그동안 단속된 시민들의 범칙금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