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마녀가 준 약을 마시고 잠이 들었어요. 한참 뒤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바닷가에 누워있는 거예요. 그리곤 진짜 사람 다리가 생긴 걸 발견했죠.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지르려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왜일까요?”
“목소리가 안 나와요!”
지난달 27일 오후 1시경 강원 횡성군 정금초등학교 운동장. ‘책 버스’에 올라탄 20여 명 저학년 어린이들이 새끼 제비마냥 똑같이 한목소리를 냈다. 초롱초롱 눈망울이 탐스러웠다.
눈 깜박할 새도 아쉬운 듯 아이들이 시선을 집중시킨 대상은 동화 구연 전문 교사들. 형형색색 옷차림으로 들려주는 구성진 동화는 아는 얘기라도 신이 나는가 보다. 전국 학교마을도서관 어디서도 동화 구연은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벤트다.
이날 정금초교를 방문한 동화구연가는 정명남(41) 윤경희(50) 최순자(35) 씨 등 3명. 피터팬과 공주, 마녀 분장으로 인어공주 등 여러 동화를 들려줬다. 얘기 보따리를 푼 지 1시간이 넘었는데 아이들은 더 해 달라고 성화였다.
“아쉽다고 더 들려 달라고 하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갖고 온 책을 읽어 달라고 내밀기도 하죠. 특히 자기도 배우고 싶다며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럴 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구나 싶어 멀리서 찾아온 보람을 느낍니다.”(정명남)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캠페인에서 동화구연팀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김 대표는 “동화구연팀이 자칫 어른 위주로 흐를 수 있는 개관식을 아이들의 축제로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학교마을도서관과 동화구연팀이 인연을 맺은 건 2001년부터. 색동어머니회 부회장인 윤경희 씨는 대학 강연 등으로 바쁘지만 꾸준히 전국을 함께 누볐다. 그도 처음엔 한두 번 봉사나 하겠다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하지만 짧은 얘기에도 울고 웃을 줄 아는 시골 아이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윤 부회장의 마음은 180도 달라졌다.
“대부분 어머니들은 동화를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시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문화 혜택에 목마른 지방 초등학생들을 보자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들도 내 아이구나 했던 거죠. 그런 기분을 느끼고 나니 또 안 내려올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7년, 이제는 동참하는 동화구연가가 10명이 넘는다. 모두 색동어머니회 소속이자 주부들이다. 윤 씨는 “다들 나처럼 그냥 한 번 와봤다가 아이들은 물론 ‘작은 도서관…’ 사람들과 주민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다음엔 언제 가느냐’고 먼저 묻는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봉사한다는 우쭐함보다는 스스로 얻는 만족감이 더 크다. 2006년 색동어머니회에 들어온 최순자 씨는 전북 무주군 태생이다. 겨울이면 ‘엄마가 눈을 쓸어줘야 학교를 갈 수 있었던 산골’ 출신이다. 학교마을도서관에 오면 책을 마음껏 읽을 여건이 안 됐던 어린 시절이 눈앞에 겹쳐진다고 한다.
“시골 살림에 어린 자식에게 책을 사주기란 쉽지 않았죠. 하지만 가끔 선생님 사택에서 책을 빌려 읽곤 했습니다. 지방에 내려와 동화구연을 하면 그때가 떠올라요. 좋아하는 책을 읽게 됐다는 부푼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 그걸 아이들과 나누고 갑니다.”
이날 개관식이 열린 정금초교는 106번째 학교마을도서관. 김진선 강원지사, 한규호 횡성군수 등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3400여 권의 책이 전달됐다.
횡성=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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