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권리를 행사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삼성그룹의 주주명부를 보여 달라는 시민단체의 신청을 법원이 거부했다.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되는 주주명부 열람 신청이 기각됨에 따라 주주 권리를 남용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행태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동명)는 삼성생명 주식 10주를 가진 경제개혁연대 직원 신모 씨가 최근 삼성생명을 상대로 지난 4년간의 주주명부를 열람 및 등사하겠다며 낸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14일 밝혔다.
신 씨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생명의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차명 보유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과거 주주명부를 확인해 의혹을 밝혀내겠다”는 취지로 열람을 신청했다.
앞서 같은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경제개혁연대가 신세계를 상대로 낸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과거 주주명부를 비치할 의무가 없고, 주주명부 열람은 주주 권리 확보 및 행사와 관련될 때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신청인은 정치적 의혹을 해소하려고 주식 1∼10주를 의도적으로 사서 취지와 맞지 않게 열람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 측은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하고 소액주주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했다.
국내 상법에 주주명부 열람을 허용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대법원 판례에 “부정한 목적으로 신청한 열람 및 등사는 기각한다”고 밝힌 정도다.
이 때문에 다른 목적으로 주주명부를 열람한 뒤 이를 주주대표 소송 등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