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형 사업자 인상분 보전 요구… 정부 난색
신도시 학생 통학 불편… 인근 학교 과밀 우려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묵동 신묵초등학교 운동장은 반쯤 파헤쳐진 채 방치돼 있었다. 운동장을 둘러싼 펜스에는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있다. 학생들은 인근 중랑천에서 체육수업을 받는다. 이 학교는 내년 3월까지 운동장에 새 교사(校舍)를 짓는 대신 기존 교실 터를 운동장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2월 초 착공했지만 원자재 값 폭등으로 땅만 판 채 중단됐다. 이 학교 김상홍 행정실장은 “내년에도 중랑천에서 수업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
교육과학기술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사가 중단됐거나 차질을 빚고 있는 공립 초중고교가 전국에 50여 곳에 이른다. 차질을 빚고 있는 학교 공사는 모두 민간이 학교를 짓고 매년 정부로부터 이용료를 받는 임대형민자사업(BTL) 방식이다.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는 폭등한 자재 값을 반영해 이용료를 높여 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정부는 난색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들이 입주를 하더라도 학생들은 먼 곳의 학교에 다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대형민자방식 건설 80% 넘어
교과부에 따르면 신·개축을 진행 중인 공립 초중고교는 124곳. 이 가운데 80%를 웃도는 104곳이 BTL 방식으로 건립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발주할 96개 학교 공사도 대부분 BTL 방식이다.
건설업계는 BTL 방식으로 짓고 있는 학교의 절반인 50여 곳이 사실상 공사 중단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올해 발주할 96개 학교 신축도 차질이 예상된다.
신묵초교 공사를 맡은 엘에이치건설 강성권 사장은 “올해 들어 철근 값이 폭등하면서 서울에서 맡은 15개 학교 공사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학교 BTL 사업을 하고 있는 덕산건설 장정수 전무는 “공동 사업자는 이미 사업을 포기했다”며 “우리도 이미 투자한 18억 원을 날리더라도 사업을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 애꿎은 학생, 학부모만 피해
경기 부천 수주고는 3월 개교했지만 식당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최근까지 민간업체로부터 도시락을 공급받았다.
올해 말부터 2만8000여 채의 아파트가 입주할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에는 17개 학교가 들어서야 하지만 상당수는 개교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30여 개 학교에서 개교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교과부 교육시설지원과 배정익 사무관은 “개교 차질로 신도시 학생들이 먼 거리로 통학할 경우 인근 학교도 학생 수가 늘어나 교육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정부-업계 공사비 인상 줄다리기
입찰 조건에는 ‘3% 기본 물가상승률 인정’ 조항이 있을 뿐이다. 이수건설 신기범 민자사업담당 부장은 “2007년 1월 t당 46만1000원이던 철근 값이 86만 원을 웃돌고 있다”며 “원자재 값 인상분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투자법에는 건설기간 중 물가변동률이 현저하면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정건용 민자사업관리과장은 “물가변동률이 ‘현저하다’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이지만 사업비 조정에 대해 검토는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