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내부단속 신풍속
요즘 상당수 기업은 ‘전직(前職) 공포’로 남모르는 고민을 하고 있다. 회사를 떠난 일부 임직원이 기업 내부의 문제점이나 비리를 언론사 등에 알리겠다며 금전이나 회사 복귀 등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사태 이후 이런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삼성 사태가 재계에 투명경영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위기관리(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은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A기업의 한 임원은 “김 변호사의 폭로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투명·윤리경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업 풍속도’에는 다른 측면도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 이후 기업 내부의 인사(人事) 분야에서 경직성이 심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회사에 불만을 가진 전현직 임직원이 회사의 약점을 이용해 폭로나 협박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능력이 떨어지거나 회사에 대한 애정이 낮은 임직원이라도 과감한 인사 조치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을 하는 기업이 많다.
신규 채용이나 승진에서 ‘인간적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중시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B기업의 한 관계자는 “삼성 사태 이후 인사에서 무엇보다 ‘최소한 등에 칼을 꽂지는 않을 사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채용 때에도 과거보다 평판 조회를 훨씬 강화하고 인성(人性)을 중요한 항목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특히 상당수 기업의 임직원들이 업무능력이나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는 무관하게 김 변호사와의 학연(學緣)이나 지연(地緣)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는 현실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김 변호사의 고교 동문인 한 기업의 전직 고위임원은 “그동안 삼성의 행태에도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김용철 같은 부하’가 회사에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면서 “각 기업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만에 하나라도 업무외적 요인 때문에 이번 사태의 ‘유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김 변호사 사건은 ‘유별난 변호사’가 사고를 친 특별한 사례일 뿐”이라면서도 “이번 사태 이후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속내를 털어놓기 힘들어지는 등 아무래도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