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확실땐 공개를 vs 刑 확정전엔 안된다
―신상 공개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최영미 위원=확정 판결 전의 피의자라도 자백이나 물증으로 범인이 확실하다면 얼굴과 이름을 적극 공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쇄살인범이나 재범 이상의 아동 성범죄자는 미국의 대부분 주(州)처럼 키와 몸무게 등 신체 특성까지 자세히 공개해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성진 위원장=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은 그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 법 감정이 많이 흐르는 듯합니다. 하지만 범죄가 확실시되는 경우라도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면 초상권 침해의 문제가 생깁니다. 만에 하나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윤영철 위원=최근 일어난 아동 성범죄 사건들이 같은 범죄 전과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그들의 신상을 공개했더라면 예방이 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때로는 TV에서 공개 수배라면서 화면에 범인의 얼굴까지 내보냈는데도 경찰은 마스크와 모자로 이들의 얼굴을 감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마저 보게 됩니다.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특수한 공익 사건에서는 예방의 실익도 중요하니 공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황도수 위원=성범죄자들의 유죄가 확정된 뒤 공개하면 기억에서 멀어져 있을 테니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공개 주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헌법이 초상권과 성명권을 보장하고 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감안한다면 범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실정법상 위험이 따릅니다.
―공개할 경우 그 한계를 찾는다면….
▽정 위원장=공익상 필요하다고 해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려면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합니다. 최근 입법예고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도 피의자의 신상 공개보다는 처벌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신상 공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국회를 통한 법적 제도화로 공익과 인권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최 위원=초상권과 성명권은 범죄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부여된 권리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피해자의 얼굴은 공개되는 반면 가해자의 얼굴은 보호받는 경향마저 엿보입니다. 아동이나 여성이 성범죄의 주된 대상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공개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윤 위원=어떤 범죄에 대해, 어느 시점에,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부분까지, 얼마 동안이나 공개할 것인가 등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공개는 명예훼손과 충돌할 우려가 있습니다. 범죄자의 정보가 필요하거나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에 한정해서 열람하도록 하는 소극적 공개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방안은 어떨지요.
▽황 위원=‘주홍글씨 형벌’식으로 모두 드러낸다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겠지요. “대한민국에서 살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전자팔찌 도입 등 법적 제도를 정비하는 편이 실효성을 가지리라 봅니다.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상세한 조항을 마련하는 등 법제도의 세부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언론은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최 위원=무고한 희생을 막자는 범죄 예방에 목표를 둔다면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공개가 가장 무서운 방법입니다.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신문과 TV에서 일정한 지면과 시간을 적극 할애할 것을 제안합니다. 국민의 성범죄 체감지수는 생각보다 훨씬 높고 심각하니까요.
▽정 위원장=무분별한 신상 공개보다는 성범죄 예방 및 범인 검거 예산과 인력의 보강, 치료감호 절차의 재점검, 성범죄 전문가의 양성, 사회 복귀 범죄자에 대한 사후관리 등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신상 공개도 그 범위와 방법을 심의하는 기구가 있어서 법적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윤 위원=언론도 자칫 소송에 걸리면 골치 아프니 신상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론 나름의 보도 준칙을 마련하고 공익과 직결되는 사안은 소신 있게 보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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