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광혁 교수 16가지 세계악기 연주
즉석 마술 공연에 주민들까지 흠뻑
“이건 스코틀랜드에서 사용되는 백파이프예요. 이렇게 겨드랑이로 밀어서 소리를 내는 거예요.” “우와∼.” “뿌웅∼.” “하하.”
아이들의 웃음과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에 엄하기만 했던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입에서 계속 종이가 튀어나왔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사용한다는 케나, 삼포냐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악기였다. 112번째 생긴 학교마을도서관에는 3000권이 넘는 책이 들어왔다.
지난달 25일 강원 강릉시 사천초등학교에는 문화 잔치판이 벌어졌다. 본보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네이버가 함께 진행해 온 ‘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캠페인에 본보가 주최하는 ‘친구야!! 문화예술과 놀자’(한진중공업 후원) 프로그램이 더해졌다.
‘친구야!! 문화예술과 놀자’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부족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찾아가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시작된 이 행사는 강원 삼척시, 충북 단양군 등에서 열려 호평을 받았고 이번이 9회째다. 특별한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이 학교 학생 80여 명 외에도 인근 사천중 재학생 30여 명과 마을주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우광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렉처콘서트 ‘세계로 가는 음악여행’에는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체코의 크리스털플루트, 일본의 고토를 비롯해 16가지의 세계 악기가 연주됐다. 앙코르 곡을 세 차례 해야 했을 정도로 객석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동헌(6학년) 군은 “세계 곳곳의 악기를 듣고 보니 마치 세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이후 열린 정대성 씨의 ‘매직쇼’에서는 이 학교 4학년 담임인 이학규 씨가 즉석에서 참여해 즐거움을 더했다. 정대성 씨가 이학규 씨의 입에 넣은 휴지 두 장이 몇 m나 되는 종이로 변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자 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마을도서관 개관식에는 3001권의 책과 학생들의 시청각교육을 위한 빔 프로젝터가 전달됐다. 김영금 교장은 감사의 답사로 즉석에서 ‘도서관’이라는 단어로 삼행시를 지었다. “도: 도서관이 생겼어요. 서: 서울이 아닌 사천초등학교예요. 관: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축하해 주세요.”
이 자리에 참석한 최명희 강릉시장은 “전국에 있는 농촌 학교를 위해 도서 보급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동아일보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은 굳이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될 정도”라며 “강릉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임혜영(6학년) 양은 “책을 좋아해 일주일에 3, 4권을 읽지만 학교에 책이 없어 그동안 동화책만 읽었다”며 “이제는 소설이나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사천면에 산 지 13년이 되었다는 야마구치 아사미(45) 씨는 “5년 전 딸을 데리고 입학식에 왔을 때 학교 도서관에 그렇게 책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시골 학교라서 여건이 어렵다는 주변의 말에 속상했고 교육 정책에 섭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김수연 대표는 이날 사천초등학교 마을도서관에 3000여 권의 책을 기증했다. 개관식에 참석해 딸과 함께 이 책을 둘러본 야마구치 씨는 “이제 강릉 시내까지 안 가도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