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출판문화 우수성 알리려
사재털어 고서적 수집 40년째
문화계 마당발… 직함 20여개
고희 앞두고도 왕성한 활동
‘70년대 지식인들은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을 읽어야 했다. 그 출판사를 이끌어가며 그는 박물관을 세우고 민(民)학회를 만들어 민화를 모아들였다.’
시인 고은이 국내 명사를 소재로 쓴 ‘만인보’에서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69) 관장을 소개한 대목이다. 김 관장은 30년간 고서적을 모아 1990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삼성출판사 사옥에 국내 첫 출판인쇄박물관을 열었다.
○ “책으로 번 돈 사회에 환원”
“인간이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첫 30년은 준비하고 배우는 기간입니다. 두 번째 30년은 생업에 매진하고 나머지 30년은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책으로 돈을 벌었으니 이제 좋은 자료를 수집하고 후대에 되돌려줘야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인쇄문화를 가졌는데 변변한 출판박물관이 없었다는 게 박물관을 세운 이유. 소중한 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 벌써 40년이다.
“수집가는 박물관을 세운 뒤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재를 털어서 시작했지만 막상 운영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러나 유물이라는 것은 공유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가 함께 소유하는 공동 재산인 만큼 소장자는 사명감을 갖고 후대에 전달해야 합니다.”
출판사 사장 시절 영업사원을 잘 훈련시켜 ‘삼성세일즈맨 사관학교 교장’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작가와도 관계가 좋았다.
“박경리 선생은 인지를 찍는 도장을 아예 출판사에 맡겼어요. 좋은 책은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신뢰해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직원과 힘을 합해 삼성출판사를 김동리 전집, 황순원 전집, 박경리의 토지 1부를 펴낸 명문 출판사로 키웠다. 두터운 문화계 인맥을 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김 관장은 고희를 앞뒀지만 여전히 바쁘다.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등 직함만 20여 개. 박물관 미술 출판 종교 연극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인사다.
○ 고려시대부터 인쇄물 한자리에
삼성출판박물관은 2004년 서울 구기터널 어귀의 6층짜리 독립 건물로 이사했다. 이 박물관은 김 관장이 평생 동안 땀 흘려 모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국보 265호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제13, 보물 758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보·보물급 고서만 11권이 있다.
근·현대 도서류 16만여 점, 출판 인쇄도구 4만5000여 점, 고문서 1만여 점, 문방구 2만1000여 점, 서화 9000여 점 등 출판 관련 자료 40만여 점이 빼곡하다.
“고서점을 주로 다녔어요. 또 박물관을 한다니까 주위에서 좋은 자료를 가진 사람이 소개해 주기도 했죠. 소설가 이범선의 유족은 최근 작가의 유품을 박물관에 넘겼어요.”
박물관 제1전시실은 상설전시장으로 옛 인쇄기계를 비롯해 고서적, 근·현대 소설책, 최승희 공연 포스터를 전시한다.
제2전시실은 특별기획전시장. 옛날 교과서나 고서를 전시할 때가 많다.
건물 6층 세미나실에는 매주 수요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 강좌인 삼성뮤지엄아카데미가 열린다. ‘김종규 살롱’으로 불리는데 각계 명사가 강사로 등장해 인기가 높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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