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24>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

  • 입력 2008년 5월 5일 02시 59분


“인생 90… 마지막 30년은 출판 봉사”

우리 출판문화 우수성 알리려

사재털어 고서적 수집 40년째

문화계 마당발… 직함 20여개

고희 앞두고도 왕성한 활동

‘70년대 지식인들은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을 읽어야 했다. 그 출판사를 이끌어가며 그는 박물관을 세우고 민(民)학회를 만들어 민화를 모아들였다.’

시인 고은이 국내 명사를 소재로 쓴 ‘만인보’에서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69) 관장을 소개한 대목이다. 김 관장은 30년간 고서적을 모아 1990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삼성출판사 사옥에 국내 첫 출판인쇄박물관을 열었다.

○ “책으로 번 돈 사회에 환원”

“인간이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첫 30년은 준비하고 배우는 기간입니다. 두 번째 30년은 생업에 매진하고 나머지 30년은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책으로 돈을 벌었으니 이제 좋은 자료를 수집하고 후대에 되돌려줘야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인쇄문화를 가졌는데 변변한 출판박물관이 없었다는 게 박물관을 세운 이유. 소중한 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 벌써 40년이다.

“수집가는 박물관을 세운 뒤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재를 털어서 시작했지만 막상 운영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러나 유물이라는 것은 공유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가 함께 소유하는 공동 재산인 만큼 소장자는 사명감을 갖고 후대에 전달해야 합니다.”

출판사 사장 시절 영업사원을 잘 훈련시켜 ‘삼성세일즈맨 사관학교 교장’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작가와도 관계가 좋았다.

“박경리 선생은 인지를 찍는 도장을 아예 출판사에 맡겼어요. 좋은 책은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신뢰해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직원과 힘을 합해 삼성출판사를 김동리 전집, 황순원 전집, 박경리의 토지 1부를 펴낸 명문 출판사로 키웠다. 두터운 문화계 인맥을 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김 관장은 고희를 앞뒀지만 여전히 바쁘다.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등 직함만 20여 개. 박물관 미술 출판 종교 연극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인사다.

○ 고려시대부터 인쇄물 한자리에

삼성출판박물관은 2004년 서울 구기터널 어귀의 6층짜리 독립 건물로 이사했다. 이 박물관은 김 관장이 평생 동안 땀 흘려 모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국보 265호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제13, 보물 758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보·보물급 고서만 11권이 있다.

근·현대 도서류 16만여 점, 출판 인쇄도구 4만5000여 점, 고문서 1만여 점, 문방구 2만1000여 점, 서화 9000여 점 등 출판 관련 자료 40만여 점이 빼곡하다.

“고서점을 주로 다녔어요. 또 박물관을 한다니까 주위에서 좋은 자료를 가진 사람이 소개해 주기도 했죠. 소설가 이범선의 유족은 최근 작가의 유품을 박물관에 넘겼어요.”

박물관 제1전시실은 상설전시장으로 옛 인쇄기계를 비롯해 고서적, 근·현대 소설책, 최승희 공연 포스터를 전시한다.

제2전시실은 특별기획전시장. 옛날 교과서나 고서를 전시할 때가 많다.

건물 6층 세미나실에는 매주 수요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 강좌인 삼성뮤지엄아카데미가 열린다. ‘김종규 살롱’으로 불리는데 각계 명사가 강사로 등장해 인기가 높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