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친북단체, 비핵개방 폐기 등 다른 이슈 제기
“분위기 몰기보다 차분하게 논의해야” 우려 목소리
지난해 대선 이후 침체됐던 진보진영이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계기로 급속하게 결집하고 있다.
진보 시민단체들은 2일과 3일 서울 청계광장 등 전국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입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내심 이 파동이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신효순, 심미선 양 추모 시위처럼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부 친북좌파 성향의 단체들은 반미-반정부 투쟁으로 확대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진보연대, “촛불행사 조직하라” 지침=한국진보연대는 4일 ‘광우병 투쟁 지침’을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렸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자”며 “가능한 한 전국의 모든 광역, 시군에서 촛불 행사를 조직하자”는 내용이었다.
진보연대는 또 “지역별로 비상시국회의를 조직하고 통일된 국민행동지침을 알려 나가자”고 밝혔다. 진보연대는 6일 오후 서울에서 비상시국회의를 열어 본격적인 투쟁을 선포하고 이후 매일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진보연대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동당,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민족문제연구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 37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3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광우병 미친 소 수입 무효 시민문화제’를 주최한 단체는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산하 ‘광우병 국민감시단’이다.
본부 홈페이지에는 선전전에 사용하면 좋을 자료라며 광우병의 위험을 알린 방송사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광우병에 걸린 소와 환자들의 모습을 담은 자극적인 동영상, MP3 노래 파일등을 올려 다른 홈페이지로 퍼 나르도록 하고 있다.
또 ‘범국민 촛불문화제’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를 10명씩 릴레이로 보내기, 블로그, 게시판 등에 행사 홍보 글 올리기 등 온라인 활동도 적극 독려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농촌 의원’으로 알려진 강기갑 의원을 앞에 내세워 촛불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일부 단체, 반미-반정부 시위로 확대 움직임=일부 친북좌파 성향의 단체는 쇠고기 문제를 한미 FTA 저지는 물론 반미, 반정부 투쟁으로 확대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청학연대), 한총련은 공동으로 2일부터 이명박 규탄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서명 내용에는 ‘광우병 쇠고기 협상 무효, 한미 FTA 비준 반대’뿐만 아니라 ‘미군 주둔비 인상 반대, 21세기 한미 예속동맹 폐기’ ‘비핵 개방 3000 폐기하고 6·15, 10·4선언 국회 비준’ ‘물가 폭등, 경제 파탄, 서민경제 관심 없는 부자정부 규탄’ 등 반미-반정부로 확대할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위의 세 단체는 촛불시위를 주최하며 행사 이름을 ‘이명박의 미친 외교 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로 짓고 ‘한미 쇠고기 협상 무효’ ‘한미 FTA 비준 반대’ ‘비핵 개방 3000 폐기’ ‘10·4선언 비준 촉구’ 등을 외쳤다.
청학연대는 홈페이지에 ‘자주의 촛불, 반이명박의 촛불을 들자’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민중이 폭발하고 있는 것은 광우병 파동에만 있지 않다”며 “미국의 요구에 머리를 조아리고 국민의 생명을 미국에 갖다 바치는 이명박은 친미 사대 매국노”라고 선동했다.
▽‘Again 2002?’=이에 따라 2002년 ‘효순·미선 양 추모 촛불집회’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 양주시에서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당시에는 국민적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해 11월 20일 미국 법정의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 평결이 내려지는 것을 계기로 국내 여론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 사회단체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고, 진보진영이 대거 가세하면서 반미 시위로 급속히 번졌다.
진보진영은 이 사건을 ‘미군에 의한 한국 여중생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선거기간 내내 촛불집회를 주도하며 대선을 ‘반미 대 친미’ 구도로 몰아가려 했다. 촛불집회는 2002년 대선을 진보와 보수진영 간의 이념 대결로 치닫게 하는 주요 이슈가 됐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2002년 ‘반미’를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포장했던 이들 단체가 이번에는 ‘반미’를 ‘먹을거리의 안전문제’로 교묘히 포장해 선동하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며 “정부에 정치적인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 아래 비객관적인 루머를 퍼뜨리는 일을 중단하고 차분히 대책을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