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30초전까지도 잠잠하던 파도 4곳 덮쳐 사람 휩쓸어가

  • 입력 2008년 5월 5일 02시 59분


“천둥-벼락치는 소리 이내 비명으로 변해”

■ 사고 재구성

한순간이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친 뒤 모든 것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은 가족들의 울부짖음이었다.

죽도 ‘보물섬 횟집·커피숍(보물섬)’에 설치돼 있는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고 당시의 화면은 한 편의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죽도에 갑작스러운 ‘거대한 죽음의 파도’가 몰려온 것은 4일 낮 12시 38분경.

당시 죽도에는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바닷가로 나들이 나온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물섬 주변과 난간 뒤에 있는 갯바위 주변에도 적지 않은 나들이객이 모여 있었다. 일부는 가게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일부는 바다와 가까운 갯바위에 앉아 있었다.

1분 분량의 CCTV 화면은 평화롭고 조용한 휴일 한낮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30초 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올 것이란 것을 짐작하게 하는 이상 징후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CCTV 화면에는 숨진 채 발견된 박종호 씨가 아들 성우 군을 무동 태우고 난간 계단을 따라 갯바위 쪽으로 나가는 모습도 찍혀 있었다.

박 씨는 갯바위 앞에서 성우 군을 내려놓았고, 성우 군은 아버지 근처에서 뛰어다녔다. 그러나 30초 뒤 갑작스럽게 파도가 밀려왔고, 박 씨 부자는 파도에 휩싸였다. 성우 군의 모습이 사라진 데 이어 5초 뒤 박 씨의 모습도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후 박 씨 부자의 모습은 화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동영상 : 이기진 기자


▲ 영상 취재 : 이기진 기자


▲ 영상 취재 : 신원건 기자

박 씨 부자를 삼킨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혀 10m 높이의 포말로 부서지며 죽도 갯바위를 휘돌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던 나루터 부근을 덮쳤다.

당시 박 씨처럼 난간 너머 갯바위 쪽에 있었지만 박 씨보다 난간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파도가 몰려오자 재빠르게 난간 뒤로 몸을 피했다. 파도는 남포방조제에 부닥친 뒤 이내 포말로 사라졌다.

결국 보물섬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 중에는 바닷가에 가장 가까이 나가 있던 박 씨 부자만 변을 당한 것이다.

부상자 김혜곤(32) 씨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나루터 인근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 고명래(67) 씨는 “느닷없이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며 “밖으로 나가 보니 아이들이 ‘우리 엄마 죽었다’며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바다를 쳐다보니 사람들이 둥둥 떠 있었다”며 “20년 동안 이 자리에서 장사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보령=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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