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김민철(9·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군은 TV를 많이 보지 않고 컴퓨터 게임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2학년 들어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1학년 때만 해도 양쪽 시력이 1.2였는데 최근 학교 시력검사에서 0.4가 나왔다. 김 군의 부모는 아이의 눈이 갑자기 나빠지자 걱정이 돼서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안과를 찾았다.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사는 “컴퓨터도 안 하고 TV도 잘 안 보는데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면 학습량이 갑자기 많이 늘어난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군은 1학년 때보다 과제물이 많아지고 학원도 새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습량이 두 배 정도 늘었다.
김 군의 부모는 “아이가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서 눈을 자주 비비며 피곤해한다”면서 “앞으로 학습량이 더 많아질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중해서 공부할 때 눈 근육 긴장=컴퓨터 사용과 TV 시청 못지않게 과도한 공부도 시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요즘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많은 양의 공부를 하기 때문에 눈이 쉽게 나빠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정도는 심각해진다.
건양대 의대 김안과병원이 2006년 서울시내 8개 초등학교 학생 9641명을 대상으로 안과 검진과 생활습관을 조사한 결과 공부 시간이 늘어날수록 근시, 난시 등 눈의 이상이 발견되는 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학년생 중 3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15%였지만 6학년은 43%가 3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답했다. 눈을 집중해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함께 증가했다. 눈의 이상을 발견했다고 응답한 1학년생은 29%였지만 6학년생은 44%였다.
김성주 김안과병원 원장은 “집중해서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 때는 눈이 최고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면서 “수정체를 수축·이완하는 근육 피로도가 높아져 결국 근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가성근시’ 주의=갑자기 학습량이 크게 늘면 ‘가성(假性) 근시’가 생길 수 있다.
가성근시는 실제보다 더 눈이 나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독서와 필기를 하면 눈의 조절근육이 수축되는데, 이 상태가 장시간 지속되면 근육이 수축한 채로 경련이 일어나고 물체가 흔들리거나 흐릿하게 보인다.
가성근시는 1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하면 나아질 수 있다. 가성근시는 2, 3개월 내에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진짜 근시로 악화될 수 있다.
가성근시 학생 중에는 눈이 영구적으로 나빠진 것으로 착각하고 높은 도수의 안경을 쓰는 사례가 있다. 이럴 경우 실제 시력에 맞지 않는 도수의 안경을 끼게 돼 오히려 눈이 더 나빠질 수 있다.
하루 3시간 이상 책을 보는 초등학교 4학년 김예진(11·서울 은평구 불광동) 양은 올 초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집 근처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했더니 좌우 0.1이 나와 도수 ‘―5 디옵터’의 두꺼운 안경을 맞췄다.
예진 양은 안경을 쓴 후부터 두통이 생겼다. 가성근시인 줄 모르고 높은 도수의 안경을 써서 두통이 생긴 것이다. 예진 양은 안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안경 도수를 ‘―1 디옵터’로 바꾸자 괜찮아졌다.
이현수 가톨릭대 의대 안과 교수는 “아이들이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면 안경부터 맞춰 주는 부모가 많다”면서 “처음 안경을 쓸 때는 가성근시 여부를 확인한 후 안경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방 전체 조명과 스탠드 조명 함께 켜야=전문가들은 “학습량이 늘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환경을 바꿔 주고 눈의 피로를 풀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시간 공부한 후에는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마사지를 해 준다. 눈을 감고 양손의 가운데 세 손가락으로 눈꺼풀과 눈두덩을 꾹꾹 눌러 주면 긴장이 풀린다.
적절한 조명도 중요하다. 공부할 때는 방 전체 조명을 켜고 스탠드 조명도 함께 켜야 눈에 피로감이 덜하다. 오른손잡이라면 스탠드는 책상 왼쪽에 둬서 손 그림자가 지는 것을 막는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