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5월 들어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학기 초에 품었던 ‘초심’은 흐트러진다. 3, 4월에 열심히 공부했건만 성적은 오르지 않고 압박감만 더하다. 연휴와 화창한 날씨는 청춘의 끓는 피를 자극한다. 5월의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도미노 현상’처럼 6월은 물론 여름철 공부까지 망치는 학생이 허다하다. 대입전문학원 스카이에듀 박수호 영어과 학과장은 “이 시기에 슬럼프에 빠져 갈팡질팡하면 6월 모의고사 성적까지 엉망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슬럼프를 헤치고 나와 초심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각고의 노력 끝에 슬럼프에서 탈출해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슬럼프 탈출법을 들어 봤다.》
공부방법 확 바꿔라
올해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한 김정호(20) 씨. 그는 고교 3년생이던 2006년 ‘5월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해 수능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전교 10등 수준이었던 김 씨는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더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재수를 결심한 김 씨는 공부법을 총체적으로 바꿨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공부하던 수능 외국어 영역은 ‘암기’보다 ‘이해’ 위주로 내용을 풀어주는 강의만 들었다. 문법을 따로 떼어 설명하는 게 아니라 문장 속에 녹아있는 문법을 체화해주는 강의를 들었다. 수학은 ‘자신감 회복’을 목표로 삼았다. 새로운 문제를 풀기보다 기출문제 위주로 반복 학습을 했다. 과학탐구영역은 새 문제유형에 대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뒀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 등 교양서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공부법을 확 바꾸니 자신감이 살아났다. 당연히 결과도 좋았다.
올해 연세대 생활과학부에 입학한 김민정(20) 씨. 지난해 봄에 김 씨는 공부를 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고민과 잡념이 많았다. 자신의 공부법을 곰곰이 따져본 김 씨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어떻게 공부했는가를 체크해 보자.’
김 씨는 매일 공부를 시작한 시간과 마친 시간을 노트에 적어 ‘총 공부시간’을 기록했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공부했는지’도 메모했다. 쉰 시간은 분 단위까지 기록하며 반성의 계기로 삼았다. 과목별 총 공부시간을 산출해 서로 비교함으로써 과목별 투자 시간의 균형을 잡았다. 취약 과목인 수학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명제가 정답이란 결론을 내렸다. 고난도 문제보다 교과서에 나온 기본 연습문제 위주로 공부하면서 개념 이해를 중시했다. 이런 식으로 공부법을 바꾸니 늘 2, 3등급에 머물렀던 수학과 과학의 등급이 1단계 올랐다.
김 씨는 “조급한 마음에 문제만 많이 푸는 학생이 많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 조심해야 한다”면서 “많은 문제를 풀려고 애쓰기보다는 검증된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잠을 관리하라
수면관리에 실패하고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 이런 학생은 더위가 느껴지는 5월 무렵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를 느끼면서 슬럼프를 겪는다.
올해 서울대 사범대 과학교육과에 입학한 임고은(19) 씨. 임 씨는 지난해 3월 아침잠을 관리하지 못해 5월 내내 슬럼프를 겪었다. 모의고사 언어영역 등급이 한 단계 떨어진 것. 오전 8시 40분에 시험을 시작하는 언어영역은 임 씨에겐 ‘고통의 과목’이었다. 평소 아침잠이 많았던 임 씨로선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임 씨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잠을 보충함으로써 아침시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전 1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6시에 일어나는 것을 기본으로 삼은 뒤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쪼개어 잠을 잤다. ‘쓸 데 없는 걱정을 할 시간에 차라리 잠을 보충하자’는 생각이었다. 임 씨는 마침내 수면조절에 성공했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능 1등급을 얻어냈다.
조급한 마음에 수면량을 줄이면 한두 달 만에 체력은 바닥이 난다. 입맛도 떨어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감기에도 자주 걸리게 된다. 적절한 수면관리는 수능 고득점의 ‘보이지 않는 핵심’이란 얘기다.
마음을 컨트롤하라
서울 홍대부속여고 3학년 부장인 박승렬 교사는 ‘심리적 불안’을 슬럼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박 교사는 “3, 4월 학력평가에서 성적이 오르지 않은 수험생들은 5월이 되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면서 슬럼프가 온다”고 말했다.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을 보면서 받는 정신적 압박감도 크게 작용한다.
박 교사는 마인드컨트롤에 도움이 될 만한 방법으로 담임 교사와의 상담을 제안했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땐 자신의 성향과 성적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담임 교사와 대화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목표 대학에 관한 정보와 합격 수기를 읽는 것도 흐트러진 정신력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나 학원에서 자리를 바꿔보거나 공부방의 책상 위치를 옮겨보는 것도 좋다. 주말에는 독서실이나 인근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학습공간에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슬럼프는 언제 오나?▼
[1]3, 4월 들인 공에 비해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
[2]성적이 오르는 친구를 보며 자신의 공부법이 틀렸다는 생각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때
[3]수면관리 실패와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체력이 저하될 때
[4]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 마인드컨트롤에 실패했을 때
▼슬럼프 극복 방법▼
[1]일일, 주간, 시험주기에 맞춰 목표를 써서 책상 앞에 붙이고 총 공부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점검한다
[2]영역별 출제 경향을 먼저 파악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학습방법에 변화를 준다.
[3]숙면을 취할 수 있는 시간대를 찾고 기상 및 취침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4]‘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5]담임 교사와 상담해 자신의 상황을 점검하고 주기적으로 공부 장소를 바꾸는 등 환경에 변화를 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6]자투리 시간에 목표 대학의 정보와 합격 수기를 읽으며 정신력을 배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