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서 동화구연 배워 유치원-병원 등 출강
경력 살려 한자-영어-경제교육까지 과목 다양
《“쪼르르 우유 따라 졸졸졸 마시면 룰루랄라 예뻐져요∼
쪼르르 콜라 따라 졸졸졸 마시면 아야아야 이가 아파요∼.”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노인복지관 교육장.
동화구연가 현혜선 씨가 30여 명의 ‘노인 학생’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은 한 소절씩 따라 부르며 두 손을 바삐 놀렸다.
부산한 아이의 이목을 모으는 율동, 표정과 목소리를 달리하며
동화 읽어주기를 배우는 동안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
동화구연 수업을 들은 이들은 활동적으로 사는 노인을 뜻하는 ‘OPAL(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선생님’이다. 대부분 전직 교사나 공무원, 기업 간부다.
서초노인복지관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부담하고, 지역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교육형’ 노인 일자리 사업에 ‘오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린이 교육에 관심 있는 노인이 이 교육을 받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오팔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물론 한 달에 두 번씩 보수교육을 받고 국제유아교육전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 병원에서 1주일에 다섯 번 강의한다. 하루에 30분씩 하면 매달 활동비 22만 원이 나온다.
2006년부터 어린이집에서 동화구연을 하는 조승희(63·여) 씨는 “교사 생활을 하며 배웠던 내용을 퇴직 뒤 금세 잊었는데 오팔에 참여한 뒤 감각을 되찾았다. 인터넷을 이용해 동화구연에 대한 자료를 찾고 집에서 혼자 연습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력의 퇴직자가 모이면서 이들이 맡는 과목도 한자와 동화구연에서 영어, 경제, 지구촌 문화 등 12가지로 늘었다.
삼성전자에서 20여 년 마케팅을 담당하다 1998년 제일산업 대표를 끝으로 퇴직한 박무호(66) 씨는 20여 개국을 출장 다닌 경험을 살려 지구촌 문화를 맡았다.
박 씨는 “책 보고 읽는 게 아니라 생생한 얘기를 들려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1세대(노인)와 3세대(손자)가 어울리며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4년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시작할 때 ‘생계형’에 초점을 맞췄다. 노인 대부분이 저학력에다 연령이 많고 노후 대비가 안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용돈이 궁하지 않아도 사회활동을 원하는 노인이 있음을 파악하고 경력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교육형’ 일자리를 점차 늘렸다.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지원과 최기호 사무관은 “올해는 교육형 일자리를 지난해보다 1200여 명 증가한 1만4406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선할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서초노인복지관이나 경북 경산사회복지관처럼 퇴직자의 경력을 살려 강의를 세분화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목이 다양하지 않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정미애 공공지원팀장은 “시행기관이 지역의 특성과 퇴직자의 욕구를 파악해 교육형 일자리를 내실화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이서연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