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을 하던 3학년 이수지(18) 양이 문제집을 들고 교과부장실을 찾았다. 이 양은 이주형(45) 영어 교사에게 문장에 따라 현재분사와 과거분사가 어떻게 쓰이는지 물었다.
이 학교 2층 교과부장실은 교사와 학생이 밤늦은 시간에도 스스럼없이 만나는 ‘학습 사랑방’이다. 학생들은 공부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교사를 찾아가 질문을 하고 토론을 벌인다.
전남 함평의 유일한 인문계 고교인 학다리고는 1970, 80년대 명문 사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1945년 지역 유지들이 육영의 뜻을 모아 개교한 이후 학생 수가 많을 때는 1500명이나 됐다. 조성욱(6회) 전 법무부 차관, 강운태(16회), 이용섭(18회) 18대 국회의원 당선자, 김기수(20회) 육군 중장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이농 현상이 계속되면서 학생 수가 크게 줄어 현재 재학생은 422명이다.
평범한 ‘시골학교’가 된 학다리고에 희망을 불어넣은 것은 동문들.
동문들은 옛 명성을 되찾자며 2년 전부터 학교발전기금 모금에 나섰다. 동문회는 재학생 학력 증진비로 매년 1억2000만 원씩 5년간 6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양한모(58·이비인후과 원장) 총동문회장은 “후배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동문들이 나섰다”며 “머지않아 모교가 전남 서부권의 명문으로 거듭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동문회는 지난해 3월 학교면 출신인 서광수(60) 전 광주시부교육감을 ‘최고경영자(CEO)형 교장’으로 영입했다. 서 교장은 흐트러진 면학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독특한 학습체계를 도입했다.
학생의 개인차와 수준을 고려한 영어, 수학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학생이 원하지 않는 강좌는 과감하게 폐강하는 학생 중심 보충수업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윤다애(18·3년) 양은 “솔직히 학교가 갑자기 변해 처음에는 따라가기 힘들었다”며 “학력 수준에 맞춰 수업을 듣고 보충학습을 하면서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력은 올해 대학입시 결과로 나타났다. 서울대 2명, 연세대 고려대 각 4명 등 서울지역 대학에 20명이 합격했고 졸업생 150명 가운데 직업교육을 선택한 10명을 제외한 140명 전원이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도 140명 정원에 250명이 지원했고 합격자 절반 정도가 중학교 내신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우수 학생들이었다.
서광수 교장은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전남도교육청 장학지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학교로 평가받았다”며 “교육의 목표를 학력 증진에 두면서 전인교육에도 힘써 사학 명문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