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관 美파견” 대책발표 하루전까지 우왕좌왕
휴교설 마구 퍼지는데 말로만 “학생지도 강화”
주무부서들 여론동향 파악못해 초기대응 실패
최근 ‘인터넷 괴담(怪談)’ ‘휴대전화 문자 괴담’으로까지 확산되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광우병 괴담’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왜곡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합의 후 나타나는 우리 사회 일각의 과장·왜곡된 유언비어 난무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번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회 각계의 세력이 광우병 괴담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또 광우병 괴담이 불거진 뒤 정부의 대응이 좀 더 신속하고 깔끔했더라면 이처럼 불안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괴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 데는 외부적 요인과 함께 안이하고 미숙한 대응과 위기관리능력 부재(不在)를 보인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 농식품부-복지부 수수방관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이 ‘광우병 논란’으로 번진 결정적 계기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강한 의혹을 제기한 4월 29일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인간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서는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의학적으로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은 일부 논문을 토대로 ‘미국산 쇠고기=광우병 발병’의 가능성을 과장되게 보도해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인터넷을 통해 각종 광우병 괴담이 빠른 속도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는 근거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도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의 내용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및 반론 보도를 신청한 것은 이달 6일이었다. 중재위의 조정 결과는 별개로 치더라도, 정부는 ‘명백히 잘못된 내용’이라고 판단한 보도에도 제대로 해명과 반박을 하지 않아 국민의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농식품부와 함께 광우병 문제의 또 다른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및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역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나왔는데도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광우병 괴담의 파장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론화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었다. 동아일보가 이달 1일 ‘미국 쇠고기 괴담에 소비자 불안’이란 제목으로 첫 보도를 하고 다음 날인 2일 다른 주요 신문도 기사나 사설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자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2일 1차 토론회에서 “김용선 한림대 의대 학장의 논문은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취지의 논문이 아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이때도 논문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했다. 질병관리본부는 6일에야 홈페이지에 김 학장의 논문 전문을 게재하면서 연구 결과가 곡해됐다고 설명했다.
또 농식품부가 “광우병에 관한 근거 없는 오해와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어 정확한 사실을 알린다”며 인터넷 홈페이지에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이라는 글을 올린 것은 6일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도 이날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이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인터넷 괴담의 실태와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에야 나온 것이었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에도 농식품부는 우왕좌왕했다.
농식품부는 5일 브리핑을 통해 “검역관을 미국에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날인 4일 긴급 당-정-청 회의를 마친 뒤 한나라당 관계자가 “농식품부에서 5일 대책 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농식품부는 “발표 계획이 있는지, 발표할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형식으로 발표할 것인지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교과부-문화부-청와대도 책임
교육 당국의 안이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초중고교생 사이에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를 통해 ‘5월 17일 집단 휴교설’ 같은 근거 없는 내용이 떠도는 상황에서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교과부는 사태가 확산되고 언론이 인터넷 괴담, 문자 메시지 괴담의 실태와 폐해를 집중 보도한 뒤인 7일에야 긴급 시도교육감 회의를 소집해 “학생 장학지도를 강화하고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일부 교사들이 광우병에 관해 왜곡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교육 당국은 제대로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인터넷 괴담 등 논란이 불거질 때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화부는 각 부처 대변인 회의 등을 통해 국정 현안에 대해 여론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책 등을 마련한다고 했으나 별로 성과가 없었다.
청와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른바 인터넷 괴담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확산돼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솔직히 언론이 인터넷 괴담의 문제점을 보도하기 전까지 그 어떤 라인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제대로 된 보고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책임진 경제수석실은 한우 브랜드 대책과 사료 값 폭등 대책 마련에만 골몰했다.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대변인실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뒤늦게 7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네이버, 야후, 다음, 파란, 엠파스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자체 블로그 ‘푸른팔작지붕아래’를 통해 광우병에 관한 ‘블로그 청문회’를 열어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누리꾼들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