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서 먹겠어요?”…괴담에 움츠러든 소비자들

  • 입력 2008년 5월 8일 19시 50분


"속이 타요. 2주째 손님이 없습니다. 한우 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내걸어도 믿질 않으니…."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 골목에서 한우를 파는 B 식당 주인 민병춘(37) 씨는 8일 시름에 잠긴 얼굴로 가슴만 쳤다.

평소 퇴근시간 이후엔 테이블 15개에 손님이 꽉 들어차 발길을 돌리는 이가 많았다. 광우병 괴담이 2주 전부터 떠돌기 시작하며 사정은 달라졌다.

예약은커녕 2, 3개 테이블을 겨우 겨우 채운다. 이틀 전에는 1개 팀도 못 받았다. 저녁 기준 1주일에 600만~700만 원이던 매출액은 200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것도 삼겹살을 팔아 올린 수입이다.

민 씨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렇게 들썩이는데, 타격이 오래 갈 것 같아 업종 변경을 해야 하나 싶다. 이달 말까지 고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광우병 괴담의 여파가 곳곳에 미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설렁탕집, 곰탕집에서 시작된 피해가 한우 전용 식당, 한우 축산농가로까지 번졌다.

소비자들이 믿을만한 한우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참에 안 먹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에 쇠고기 자체를 꺼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학교 급식 거부하고, '수원갈비'도 타격

학생들이 급식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했다.

8일 서울 서대문구의 중학교에서는 점심 급식으로 쇠고기가 들어간 무국이 나왔지만 일부 학생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며 밥을 먹지 않았다. 학교 측은 학생들 반응에 놀라 이달 급식 메뉴에서 쇠고기를 빼기로 결정했다.

주부 김모(44) 씨는 학교 급식을 먹던 고교생 아들 둘에게 지난주부터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김 씨는 "광우병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다 해서 먹을거리에 문제가 많아 내 아이들은 직접 챙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광우병 논란 속에 경기도의 향토 음식으로 유명한 '수원갈비'도 타격을 받았다.

개업한지 10년이 넘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갈비 전문 A 식당은 하루 매출이 예전에 비해 20% 가량 줄었다.

식당 주인은 "명색이 수원갈비 집인데 소 대신 돼지갈비로 겨우 매상을 유지한다. 한우마저 미국산 쇠고기와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광우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 김모(27) 씨는 "'회식 때 쇠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상사에게 건의했다가 '지금 나보고 광우병에 걸리라는 말이냐'며 꾸지람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육류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채식주의자로 돌아선 시민도 늘었다.

중학교 교사 이모(32·여) 씨는 "얼마 전 채식주의에 관한 책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번 기회에 야채와 생선만 먹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확산되면서 먹거리 공포는 닭·오리 음식점에도 번졌다.

강원 춘천 지역의 닭갈비 업소 매출은 50~80% 정도 줄어들어 지역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꿩과 닭도리탕으로 유명한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 70여 개 음식점도 매출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식·유통업계 '비상'

외식업계는 말 그대로 전전긍긍이다.

스테이크 등 쇠고기 메뉴를 많이 내놓는 패밀리레스토랑은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

T.G.I.F를 운영하는 푸드스타의 박지석 마케팅팀장은 "2000년부터 호주산 쇠고기를 쓰고 메뉴판에 원산지를 표기하지만 미국산을 쓴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문의전화가 늘어't다. 호주산 쇠고기를 쓴다는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미국 브랜드이지만 현재는 호주산 쇠고기를 사용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도 당장 미국산을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패스트푸드업계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롯데리아는 9일부터 전국 740여 개 매장에 '호주산 청정우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이기로 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계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한국맥도날드와 버거킹도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쇠고기만 사용하고 있다"며 사태의 확산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대형마트에서는 한우와 수입산 쇠고기의 매출이 함께 떨어졌다.

홈플러스는 "광우병 괴담이 본격화한 지난달 30일부터 6일까지 일주일 동안 한우 매출은 전 주에 비해 7%, 호주산 쇠고기는 2.5% 줄었다"고 밝혔다.

이 기간 근로자의 날(1일)과 어린이날(5일) 등 공휴일이 이틀 끼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큰 폭의 매출 하락이다.

홈플러스 축산팀 김웅 팀장은 "보통 일주일에 휴일이 하루 더 늘면 축산물 매출도 약 7~8% 늘어나는데, 이번 주에는 쇠고기 괴담과 AI 파동으로 쇠고기와 닭고기 매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전 주에 비해 쇠고기 매출이 전체적으로 9%가량 줄었고 이 가운데 한우가 3%, 호주산 쇠고기가 17%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이마트도 한우 매출이 4.4% 줄었다. 호주산 쇠고기 매출은 4.1% 늘었다. 이에 대해 이마트 측은 "수입 쇠고기 행사를 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상인은 "원래 가정의 달이라 쇠고기가 많이 팔릴 때인데 사러오는 사람이 없다"며 "최상 부위가 ㎏당 6만 원 정도 하는데 일주일 사이에 1500원 이상 떨어졌다"고 전했다.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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