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 바람에 시민들 ‘촛불’ 끈다

  • 입력 2008년 5월 8일 20시 28분


“자발적 모임에 왜 탄핵-파병 얘기하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는 '건강'이라는 생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중고생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민주노총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좌파성향 대학생 연합 '다함께' 등 진보단체들도 시민들의 거부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집회현장에서 노출을 자제했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촛불 문화제 때 주최 단체 중 하나였던 민주노총의 깃발이 거의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경찰관계자는 "이들 단체들이 촛불 문화제가 자발적인 시민 참여 집회로 보일 수 있도록 평소의 시위 관행을 자제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촛불시위 참가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며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까지 참여하는 등 흥행에 성공하자 진보단체들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화장품 광고를 패러디해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피켓을 내걸고 대중적 이미지를 내세우던 '다함께'는 정치구호를 담은 유인물을 배포했다.

'다함께'는 '이명박은 탄핵돼야 마땅하다'는 제목의 유인물을 통해 "(촛불집회가) 대운하, 공기업 사유화, 파병정책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충북지부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과 광우병의 위험성에 관한 계기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진보단체들의 이 같은 정치쟁점화 움직임에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이탈로 응답했다.

촛불 시위 첫날인 2일 1만여 명에 이어 3일 2만여 명이 참가해 청계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시위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와 민주노총 등 1500여 단체들이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한 6일 3000여 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같은 날 '비정치집회'를 표방하며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는 9000여 명의 시민 학생들이 참가했다.

여의도 시위에 참석했던 중학생 정모(15) 양은 "지난번 청계천 집회는 아저씨들이 말도 너무 공격적으로 하고, 정치적인 얘기도 많아 일부러 여기로 왔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이모(22) 씨도 "청계천 미친소닷넷 집회 때 빨간 플랜카드를 나눠주며, 구호를 외치게 해 부담스러웠다"며 "이곳은 평화 침묵시위를 한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보단체들이 촛불집회의 여세를 몰아 다음달 6·15 정상회담 기념식과 미순·효순이 사망 6주기 행사, 7월 부시 대통령 방문 저지 집회를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서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정치화된 촛불집회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

신진우 기자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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