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은 최근 미국이 남 씨를 상대로 낸 범죄인 인도심사청구에서 “남 씨를 미국에 인도할 것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남 씨는 1996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한 주택에서 물건을 훔치다 이 집에 사는 전직 백인 경찰관 노인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 씨는 이듬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1998년 3월 국내로 들어와 “한국에서 재판받게 해 달라”며 자수했다.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수사로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미국에서 재판받을 경우 사형 선고가 떨어진다는 취지에서였다.
당시는 한미 간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는 과정을 밟고 있어서 한국 정부는 남 씨를 미국에 보내는 대신 석방 조치를 내렸다. 미국은 남 씨를 데려가기 위해 1999년 12월 서둘러 조약을 발효시켰고 남 씨는 국내에서 영어강사 등을 하며 도피생활을 하다 한국에 온 지 10년 만인 올해 3월 경기 광주시 퇴촌면의 한 영어학원에서 검거됐다.
재판부는 “이중 국적자인 남 씨가 미국에서 저지른 범죄가 중하고 미국에서 기소가 이뤄져 있을 뿐만 아니라 증거자료와 증인들이 모두 미국에 있다”며 “미국에서 도망쳐 국내에서 잠적한 점으로 미뤄볼 때 범죄인 인도를 거절할 만한 결정적 요소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남 씨 측은 “미국과 사법 공조를 통해 한국에서 충분히 재판을 받을 수 있음에도 한국 법원이 자국민을 미국에 넘기려 한다”며 “이는 명백한 주권 포기이기 때문에 재항고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현재까지 재항고된 3건의 인도심사청구 모두 대법원에서 각하됐다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