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 옛건물 무차별 보수 근대사 자료 소실위기에

  • 입력 2008년 5월 14일 05시 48분


인천시 “미술문화공간 만든다”

근대 건축물 감정도 않고 훼손

사료 발견돼도 관리대책 없어

인천 자유공원 밑자락에 줄지어 있는 13개의 옛 건물이 ‘중구 미술문화 공간’(예촌)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보수되고 있다.

100년 넘은 창고와 목조건물, 붉은 벽돌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지붕, 벽 전체 또는 일부를 뜯어내고 실내를 수리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건물들은 올 10월 전시실, 아틀리에, 스튜디오, 공연장, 작업장으로 꾸며져 문을 연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의 사전 조사나 참관 없이 마구잡이로 공사가 이뤄져 귀중한 자료가 소실될 우려가 높다.

개항기 일본 선사인 우선㈜ 인천본사의 목조건물(중구 선린동)이 대표적인 예다.

120년 전인 1888년 9월 8일 지어진 이 건물은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식 건축물이다.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은 최근 공사 현장감독으로부터 이 건물 지붕에서 나온 일제강점기의 당좌수표 책과 명함, 상량 나무판을 건네받았다.

당좌수표 책에는 발행자인 일본 제1국립은행, 수표 일련번호(6601∼6650)가 명기돼 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1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상황에 비춰볼 때 이 수표책의 당좌거래 액수는 건당 수십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상량 판에는 ‘명치 21년(1888년) 9월 8일’과 함께 참석자 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건물은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치면 홍보자료실로 활용될 예정이다.

일본인들이 1883∼1933년 인천역사를 기록한 ‘인천부사’에 따르면 이 건물은 우편물과 화물을 주로 처리하던 우선㈜의 사무실로 사용됐고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진 직후에는 일본군을 지휘하던 사령부로도 이용됐다.

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병화(인천시의원) 이사장은 “현장 감독에게 ‘공사 중 이상한 자료를 발견하면 잘 보관해 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었기에 이 같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며 “문화재 전문가의 감정 없이 근대 건축물을 마구 손상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 문화산업팀 관계자는 “인천시 2개 부서가 예촌의 공사와 운영을 분리해 맡고 있어 공사 과정에서 자료 관리 부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시는 일본 제1은행을 국내 최초 기록을 전시하는 ‘인천 최초사 박물관’으로 꾸밀 예정이지만 근대 자료 발굴이나 관리에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인천문화발전연구원 측은 조만간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될 영종도 ‘하늘도시’ 내 국방유적지인 영종진 복원도 촉구하고 있다.

영종진은 인천 앞바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군이 주둔해 있었고,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기 한 해 전인 1875년 9월 일본 운요(雲揚)호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운요호는 강화도 초지진을 공략하고 인천으로 돌아 나오다 영종진을 지키던 400여 명의 조선군과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군 56명이 전사했고, 영종진에 있던 대포 36문, 화승총 100여 정이 약탈됐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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