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소리 흉내에 종알대던 아이들 ‘쫑긋’
“엄마가 아기를 달래고 있었어요. ‘밖에 호랑이가 왔네, 아이고 무서워라.’ 엄마가 이렇게 말을 해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자 여기, 곶감이다.’ 아기는 울음을 뚝 그쳤어요. 밖에 있던 호랑이는 깜짝 놀랐지요. 호랑이는 자기보다 더 무서운 곶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얼른 달아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일 전남 강진군 작천초등학교 2학년 교실. 아이들은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 목소리, 호랑이 목소리,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찬호(56) 교감은 목소리 흉내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이야기가 끝났다. “자 여기까지”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문성주(9) 양은 “교감 선생님은 목소리를 다르게 책을 읽어주셔서 참 재미있는데 조금만 읽어주셔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마윤옥(59) 교장과 김 교감은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매일 한 반씩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마 교장은 “아동기에 책에 흥미를 붙이는 게 평생의 책읽기 습관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3월부터 교장, 교감이 직접 나섰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마 교장은 지난해 9월 이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아침 독서시간’을 만들어 교사들과 전교생이 매일 오전 8시 반부터 30분 동안 책을 읽도록 했다.
책읽기 목표도 정했다. 한 학년도마다 60권을 읽는 것. 10권을 읽은 아이들에게는 담임교사가 꽃그림이 그려진 인증서를 주고, 60권을 다 읽은 아이들에게는 교장이 직접 인증서를 준다. 또 전교생 70명의 개인별 독서카드를 만들어 각자 읽은 책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은 경쟁하듯 책읽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학교가 있는 강진군 작천면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농사일에 바쁜 부모들이 자녀의 책읽기를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마 교장은 “학교에서라도 규칙적인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면서도 늘 미안한 점이 있었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작천초등학교에 이날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 도착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캠페인 측이 도서 3000권을 기증한 것.
마을의 경사였다. 새롭게 단장된 도서관을 보기 위해 강진군 관계자들과 마을 주민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이번에 기증된 책 가운데 어른들을 위한 책 1000권도 포함돼 있어 도서관은 마을 주민 전체가 이용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학교 측은 농사일을 마치고 늦게 도서관을 찾는 주민들을 위해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다.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이남수(38) 씨가 야간 사서도우미를 자원했다. 야간 운영에 드는 인건비는 강진군이 부담하기로 했다. 학부모 대표인 김복순(42·여) 씨는 “우리 마을에 다문화 가정이 12가구나 되는데 외국 출신 엄마들을 위한 한글교실, 독서교실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김수연 대표는 “교장 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이 열정을 갖고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권하는 이런 학교에 제대로 된 도서관을 지원하게 돼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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