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과거는 과거일 뿐!

  • 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대입… 사업… 지난 실패 때문에 미래를 포기해야 할까요

한국 우울한 자살률…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

영화를 보러 갔는데 내용이 생각보다 재미없을 때가 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는가?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봤는가, 아니면 그냥 영화관을 나와 버렸는가? 영화가 재미없어도 끝까지 보고 나온 사람은 이미 지불한 영화 관람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미련 없이 나와 버린 사람은 재미없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경우 영화관을 나오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경제적인 사고는 이미 지난 일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어떤 선택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져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재미없을 때 영화관에 남아 있으면 얻을 게 없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오면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영화관에 계속 남아 있으면 그런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관람료를 돌려받을 수는 없다. 이처럼 한번 지출되고 나면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한다. 매몰비용은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교훈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현재의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을 하면 앞으로 얻는 것이 무엇이고 잃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 현재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시사해주지 못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므로 연연해하지 말고 잊어버려야 한다. 매몰비용 역시 다시 회수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잊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매몰비용에 집착하여 현재의 의사 결정을 그르친다. 매몰비용인 영화관람료에 집착하여 재미없는 영화를 계속 보는 것이 한 예다.

또 다른 예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제1교시 언어영역 시험을 마친 후 학생들의 반응을 들 수 있다. 언어영역이 어렵게 출제되는 해에는 1교시를 잘못 본 것을 자책하여 1교시 시험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 버리는 학생이 종종 있다. 1교시를 잘못 본 것은 지난 것(즉, 매몰비용)이므로 돌이킬 수 없다. 그것에 연연하여 시험을 중도에서 포기하면, 그해에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잃어버릴 뿐이다.

우리는 현재에 서 있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가가 중요하지, 과거에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매몰비용은 잊어버려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삶의 자세다.

이 관점에서 요즘 늘어나고 있는 자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외국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미국 10.2명(2006년), 독일 10.3명(2004년), 일본 20.3명(2005년) 등이나 우리나라는 23.0명(200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1995년에 11.8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거의 2배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10∼30대 젊은 층에서 자살은 교통사고 다음으로 높은 사망 원인이다.

자살의 원인은 주로 경제적인 문제다. 경찰청에 의하면 2006년 기준으로 빈곤 등 생계 문제로 자살한 사람이 501명, 사업 실패로 자살한 사람이 353명에 이른다. 사업 실패는 전형적인 매몰비용에 해당한다. 이미 지난 과거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따라서 매몰비용인 사업 실패를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물론 사업 실패의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업 실패가 자살이라는 의사 결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청소년 중에서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험을 못 친 것은 이미 지나간 일로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은 매몰비용이다. 과거에 집착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망친 시험에 집착하여 자살을 선택하기보다 앞으로 성적을 높이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다양한 형태의 매몰비용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것을 의사 결정의 판단 근거로 삼아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우리는 매몰비용, 즉 이미 지나가 버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현재를 살아야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안병근 공주교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