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독서로 논술잡기]‘과거 보러 가는 길’

  • 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과거 보러 가는 길’

홍사중 지음(이다미디어)

모두가 똑같이 “하늘 천 땅 지…”

조선시대의 그 많고 많던 서당

왜 창의적 사상가 못낳았을까

참교육에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달리기는 자기 반에서 제일 빨랐던 토끼. 그러나 수영은 엉망이었다. 그는 수영을 잘하려고 수많은 과외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과외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정신이상을 일으켰다. 다람쥐는 나무타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수영과 달리기는 못했다. 그래서 수영과 달리기 과외를 받은 결과 최악의 점수는 면한 D와 C 등급을 각각 받았다. 대신 수영과 달리기 과외를 받는 사이 나무타기 능력은 떨어져 A가 아닌 B 등급밖에 얻지 못했다. 이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가? 학생들의 재능을 찾아내주고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참뜻이란 얘기다. 교육을 논술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가) 교육이란 지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능력, 특히 창조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참교육이다. 그러나 서당 교육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이전이나 이후나 그처럼 많은 서당이 있었고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으면서도 우리의 사상사를 풍요롭게 만들 만한 저술이 별로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난해한 언어를 자신과의 경쟁의 노력으로 습득하고, 그 언어로 얻은 가치와 진리는 인간에게 바람직한 수양이 된다. 그러나 서당 교육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가 바라는 것은 체제에 순응하는 지능적인 인간이었다. (87, 88쪽)

(나) 미국의 학교 어린이들이 글짓기를 할 때도 나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틀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 엉뚱한 생각을 하는 창조력과 투쟁심이 있는 사람, 기성 개념을 뛰어넘으려는 사람’이라야 새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K 시몬톤 교수에 의하면 창조적인 인간은 어린 시절에 판에 박은 평범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다양한 가치 관념이 뒤얽힌 환경 속에서 자란다. 이래서 독창적인 인간형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환경에서 어떤 문제든 여러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습관화된 가운데 경쟁을 즐기며 자란다. (116쪽)

위 글은 우리의 서당 교육과 미국 교육의 상반된 특성을 보여준다. (가)는 창조성이 무시된 서당 교육의 폐단을 말한다. 서당 교육은 체제에 순응하는 지식인을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참교육과 거리가 멀 수 있다. 반면 (나)는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한 교육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개성과 재능을 보일 수 있는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제 (가)와 (나)를 바탕으로 스스로 논술 문제를 만들고 답안까지 작성해보자.

① ‘(가)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교육의 목적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시오’란 문제를 만들어보자.

(가)와 (나)는 교육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가)는 획일적인 교육을 통해 순응적 인간형을, (나)는 다양한 가치 교육을 통해 독창적인 인간형을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가)의 서당 교육도 나름의 장점은 존재하나,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오늘날 단순 지식을 축적하는 교육은 한계를 지닌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창의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창의성을 가진 학생들은 목적의식이 강하고, 모험심이 강하며, 관심 대상을 즐기는 특성을 보인다. 바로 21세기에 요구되는 인간형이다.

② ‘(나)의 관점에서 (가)를 비판하고, (가)의 입장에서 그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시오’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나)는 개성과 창의성을 위한 교육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을 거론하는 (가)의 내용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서당교육에서 학문은 ‘진리’라는 이름의 고정관념을 수집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당교육은 사람에게 필요한 인간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한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치열한 의식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반론이 가능하다. (나)에서 말하는 창의성 교육은 관용이라고 하는 공공의 정신을 파괴하는 개인주의를 양산해 낸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당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동문수학한 평생의 벗이 되지만, 창의성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단점이 있다.

교육이 사람의 재능까지 바꾸지는 못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아무리 골프 과외를 열심히 받아도 모두가 박세리처럼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서원(書院)이 1000개가 넘었는데도 뛰어난 학자는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새로운 학문의 창조를 용납하지 않는 당시 서당과 과거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하는 대목이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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