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외칠 때가 됐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더 크고 강한 경제… 더 빨리 고갈되는 자원

한번 망가진 자연을 누가 복원할 수 있을까

왜 미국 아닌 스위스 국민이 골고루 잘살까

‘좀 더 빠르게, 좀 더 높게, 좀 더 강하게’는 올림픽의 표어다. 이 문장은 우리 문명의 목표를 나타내기도 한다. 더 빠른 생산과 이동, 더 높은 경제성장률, 더 강한 국력은 모든 나라의 목표 아니던가.

하지만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E.F.슈마허는 이렇듯 당연해 보이는 목표를 흔들어 놓는다. 만약 모든 나라가 좀 더 빠르고, 좀 더 높고, 좀 더 강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걱정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인도나 중국의 경제가 떠오르면서 석유와 자원의 값이 계속 치솟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도 더 빨리 진행돼 세계의 기후는 엉망이 되고 있다. 경제만 살아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발전의 속도를 늦춰야 하는 것 아닌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경제학자들의 ‘상식’을 뒤집어 놓는다. 누구도 밑천 까먹는 사업가 보고 장사 잘한다며 칭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작 밑천부터 까먹고 있는 우리 문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문명의 밑천은 바로 자연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경제 논리는 망가지는 자연을 수수방관할 뿐이다. 석유 한 통과 MP3의 가격이 같다고 해서 이 둘의 가치가 과연 똑같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MP3가 망가지면 다시 만들면 되지만, 태워 먹은 석유는 다시 살리지 못한다.

우리는 마치 자원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것처럼 엄청나게 써 댄다. 허덕이는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드세도, 정작 경제가 살아나면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낼 자원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작다.

어디 그뿐인가. 돈 벌기에 쫓긴 나머지, 우리 문명은 자연과 인간을 좀처럼 배려하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만 해도 그렇다. 시장과 조직이 크면 더 효율적이라는 미신은 우리 생활 곳곳을 지배한다. 하지만 큰 나라들에서는 일부만 부자이고 대부분이 가난하다. 작은 나라가 골고루 잘사는 경우가 더 많다. 스위스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적인 예다. 덩치 큰 기업들도 업무를 작은 규모의 사업체들로 나누기 바쁘다. 작을수록 효율도 높고 업무 만족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경계를 없애고 더 크고 넓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난리다. 자연에도 작은 규모가 어울린다. 모든 사업체는 들어선 곳의 자연이 감당해낼 만큼의 크기로 작아져야 한다.

기술도 그렇다. 슈마허는 과학 기술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큰 공장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다. 하지만 기술이 값 비싸고 생산설비가 거대해지면, 사람들은 큰 기업에 빌붙지 않고서는 먹고살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값비싼 생산도구를 갖춘 사람들이 자신을 써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슈마허는 그래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강조한다. 간디는 물레로 옷감을 짜라고 사람들에게 권했다. 물레는 누구나 살 만큼 값이 싸다. 더구나 자기 손으로 만든 옷감을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반면, 방직공장에서 만드는 옷은 어떤가. 방직기계는 아무나 갖지 못한다. 방직 공장에서 만든 옷 또한 비싸기 마련이다. 기계 값을 물어야 하는 탓이다.

슈마허는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에는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만족시키기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간디의 말을 들려준다. 역사상 모든 현자들은 우리의 욕심을 줄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우리 문명은 욕심을 끝없이 일깨우며 이를 채우라고 다그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작은 존재다. 자신의 부족함과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겸손하게 문명을 이끌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홧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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