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야구 방망이를 다시 잡은 기쁨으로 삶이 밝아졌어요.”
탈북자 이지은(가명·27·인하대 국제통상학과 1년) 씨는 매주 토요일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다.
가장 좋아하는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어서 들뜬 마음에 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몸을 풀면서 마음속으로 ‘오늘은 꼭 안타를 쳐야지’ 하고 각오를 해요. 올해 3월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사용하는 방망이가 너무 무거워 안타를 2개밖에 치지 못했어요.”
이 씨는 3월 인하대에 입학하면서 야구 동아리인 비룡팀에 가입했다. 유일한 여성 선수이며 외야수를 맡고 있다.
매주 수, 목요일 남학생들과 어울려서 연습을 하는데 비록 나이는 많지만 방망이, 글러브 챙기기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 동아리 선배들의 신임이 두텁다.
그가 야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열두 살 때다.
“북한에서는 열 살을 넘기면 체육 종목 중 한 가지를 배우도록 하는데 일본에서 대학 시절 야구 선수를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프트볼 선수가 됐어요.”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는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했고 3할대 타율을 과시하며 열여덟 살 때는 북한 소프트볼 선수단에 뽑혔다.
“북한에는 7개 소프트볼팀이 있는데 ‘평양 소프트볼팀’의 선수가 되는 것이 소망이었어요.”
북한에서는 국가대표 선수가 아니면 논농사 등 각종 노역을 해야 한다. 그는 “북한에서 소프트볼 선수로 뛰면서 추운 겨울 금강산 철도 선로 작업장에서 노역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 담요 한 장에 의지해 동료 선수와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면서도 ‘언제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1997년 언니와 탈북한 그는 의류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소프트볼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중국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면서 우연히 한국 기업인을 만나 글러브를 선물받게 됐는데 너무 기뻐 하루 종일 웃음이 멈추지 않더군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2006년 6월 한국에 들어온 그는 대학에 입학해 비룡팀에 가입함으로써 마침내 꿈을 이뤘다.
비룡팀 동아리 학생들은 “이 씨가 비록 여학생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며 “이 씨가 신입회원으로 들어온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영어와 컴퓨터, 학교 수업 등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꿈에 그리던 운동을 다시 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남자 선수가 던지는 공이지만 올해 10개 이상의 안타를 치고 싶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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