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윤모(19·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최근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가 옆집에 사는 수험생에게서 피로해소에 효과 좋은 주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윤 씨는 “수험생들에게 ‘5월 슬럼프’가 있는데 주사를 맞고 나니 기분인지 모르지만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며 “피부과, 성형외과, 각종 클리닉 같은 곳에서 주사를 맞았다는 친구도 여러 명 있다”고 전했다.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울 강남 등지의 학부모 사이에 수험생 자녀에게 태반주사, 마늘주사, 감초주사 등 컨디션을 좋게 하고 집중력을 높인다는 ‘웰빙 주사’를 맞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컨디션 도움” 고액 주사 인기=중년 여성 사이에 ‘보약주사’ ‘노화방지주사’ 등이 인기를 끌었으나 피로해소, 질병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수험생들에게 ‘수능주사’로 통하고 있다.
태반주사와 감초주사는 한 번에 각 5만 원, 마늘주사는 1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태반주사의 경우 보통 주 2회, 10주 동안 맞기 때문에 모두 100만 원 정도 든다는 것.
서울 강남구 G성형클리닉은 “하루에 학생 5, 6명이 이런 주사를 맞으러 온다”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두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H피부클리닉 관계자는 “시간이 모자라는 수험생의 영양 보충을 위해 학부모들이 주사 요법을 선택한다”며 “몸에 좋은 성분을 몇 배 농축시켰기 때문에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부유층 학생 중에는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암 환자들이 자연치유법으로 사용하는 ‘면역세포주사’를 맞고 오는 경우도 있다.
회사원 한모(47·서울 서초구 잠원동) 씨는 “일본 거래처 직원들에게서 한국 학생들이 주사를 맞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다”며 “고3 아들이 잔병치레가 많아 2월 겨울방학 때 일본에 가서 주사를 맞혔다”고 말했다.
면역세포주사는 자기 혈액에서 빼낸 세포를 배양하는 데 2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일본에 두 번 다녀와야 한다. 한 씨는 병원에서 처치료 30만 엔(약 300만 원), 항공료 체류비 등을 포함하면 주사를 한 번 맞는 데 500여만 원을 썼다.
▽전문가 “효과 의문-부작용 우려”=예상규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면역세포치료주사를 만들 때 면역세포만 따로 뽑아내 배양한다고 하지만 배양 과정에서 면역세포가 다른 세포로 분화하면서 면역반응 균형이 깨질 수 있다”며 “면역반응이 너무 강하면 없던 알레르기 질환이나 천식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태반 내 잠복기에 있던 바이러스가 제거되지 않은 채 주사제로 만들어 주사하면 바이러스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며 “태반의 효능에 대한 납득할 만한 임상자료가 없는 데다 주사제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고 주사를 맞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이들 주사가 피로해소, 질병예방 등의 용도로 사용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닌 만큼 과대·허위 광고나 확인되지 않은 입소문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