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늘 꿈을 꾼다. 잘 때뿐만 아니라 깨어있을 때도 꿈을 꾼다. 밤의 꿈은 각자 꾸지만, 의식이 꾸는 낮의 꿈은 사람들과 함께 꾼다. 그래서 꿈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극한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피부가 짓물러지고 손발이 잘려나가는 질병인 문둥병(나병) 환자들이 그들이다. 감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된 환자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좌절감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꿈이 겪게 될 험난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환자들이 있는 곳은 전남 고흥 앞바다에 있는 소록도이다. 섬은 마치 전체가 공원인 듯 매우 아름답게 잘 다듬어져 있고 의료체계도 완비된 곳이다. 그러나 조백헌 원장은 부임하던 첫날 원생들의 탈출 사고 소식을 선물로 받는다. 병이 다 나아서 배를 타고 당당히 나가도 되는데 굳이 바다에 몸을 던져 탈출하려 하는 사람들. “이 섬에서는 죽은 자만이 말을 합니다.” 보건과장 이상욱의 조언은 낙원 같은 겉모습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배반의 역사이다.
두 번째 배반은 환자 사이의 배반이다. 나환자들의 출산을 막기 위해 강제 불임 수술을 자행하던 시절, 이상욱은 원생 전체의 침묵과 보호 아래 낳고 길러진 공동체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이상욱의 아버지는 주 원장의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오히려 같은 환자들을 착취하는 데 앞장서다 살해당한다. 억압받는 공동운명체 내부에서 벌어진 불신의 배반이다.
세 번째 배반은 사회 전체로부터의 배반이다. 병이 완치된 한민은 작가의 꿈을 안고 글을 써서 세상에 내보낸다. 그러나 읽어보지도 않고 반송되는 원고들은 세상의 차가운 거절을 보여준다. 조 대령이 득량만 간척사업을 추진할 때 소록도와 연결되고 싶어 하지 않는 육지 주민들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 시선은 소록도 사람들이 최후에 겪는 거대한 벽이다. 인간이라는 의식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실존의 배반이다.
조백헌 원장은 배반에 지친 사람들의 내력을 하나씩 깨달아가면서 극복을 시도한다. 조 원장은 우선 민주적으로 정책이 시행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주민대표인 장로회에 힘을 실어주어 억울한 일이 없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축구팀을 조직하여 전남 축구대회에 참가한다. 소록도팀이 공을 몰고 가면 상대편이 태클을 해오기는커녕 도망을 가는 경기. 결국 우승컵을 안고 돌아오는 축구팀과 함께 섬사람들은 환호한다. “문둥이도 축구할 수 있습니다.” 조 원장의 말처럼, 우리에게 당연한 일은 그들에게도 당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섬에서는 탈출사고가 발생한다. 제도의 보완도, 당당한 자신감도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죽어서야 비로소 ‘환자가 아니라 인간’이 될 수 있는 현실은 그들이 살아있는 주체가 아님을 역설한다. 소통을 거부하는 육지 사람들과 사회구조 전체가 이 섬을 ‘우리들’이 아닌 ‘당신들을 위한’ 천국으로 가둬 놓고 있는 탓이다.
이 글의 긴장을 해소시킬 작가의 대안은 바로 ‘자유’와 ‘사랑’의 조화다. 아무리 멋진 미래라도 원생들이 스스로 꿈꾸고 기획할 자유를 갖지 않는 한 그것은 원장들의 천국일 뿐이다. 선의를 왜곡하지 않는 신뢰가 가능하려면 뼛속까지 그들과 함께 하려는 애정이 필요하다. 그가 원장이 아닌 주민의 한 사람으로 소록도에 다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믿음이 시작되지 않던가. 자유와 사랑의 두 가지 길. 이청준이 제시하는 천국 건설의 소중한 씨앗이 우리 삶에서도 꿈꾸어지길 기대해 본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