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형제 모은 5억도, 10년 장만 노후자금도 허공에

  • 입력 2008년 5월 29일 19시 59분


"대체에너지 사업을 하는 게 확실하다고 믿었어요. 4형제가 함께 투자했다가 모두 5억 원이 날아갔습니다."

투자자 A씨는 주가조작 혐의로 최근 구속된 정국교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대표를 지냈던 코스닥기업 H&T에 투자했다 피해를 본 사람 중 한 명이다. A씨는 가게를 판 돈 2억5000만 원을 지난해 9월 H&T에 투자했지만 이 돈은 3개월여 만에 2000만 원으로 줄었다. 1년 간 투자해 돈을 불려 새 가게를 차리려던 A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A씨는 "확실한 투자기회라고 생각해 형제 3명에게도 권유했다"며 "형제들도 많은 돈을 잃었지만 내가 자살할까봐 오히려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를 포함해 H&T 주가조작 사건 손해를 본 사람들은 대규모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노후자금, 주택대출 자금 한순간에 날아가

H&T는 지난해 4월 우즈베키스탄에서 규소(태양전지 원료) 광산 독점개발권을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5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10월, 8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회사 측이 11월 초 독점개발권 관련 양해각서(MOU)가 취소됐다는 공시를 한 뒤 주가가 곤두박질하기 시작해 12월 초 6000원대까지 추락했으며 현재는 4000원대다.

검찰에 따르면 정 당선자와 이 회사 임원 등은 지난해 10월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 440억 원 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H&T에 투자한 사람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6000만 원을 잃은 투자자 B씨는 "당시 대표이사였던 정 씨가 계약이 체결되면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미래사업가치가 높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B씨는 "주가가 치솟자 정 씨가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고 작전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경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믿을만한 경영자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농락당했던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자 C씨(5000만 원 손해)는 "고유가 시대에 좋은 사업재료라고 생각했지 주가조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갖가지 피해 사례가 올라와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해 10년 넘게 모은 돈을 이렇게 허망하게 날린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1억 2000만 원을 다시 모으기에는 너무 지쳤습니다."(자양동마담)

"주택구입자금을 대출받아 투자한 게 지금 1000만 원 남았습니다. 그냥 한강으로 가고 싶네요."(수호천사262)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정말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네요."(아자화이팅)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지금까지 200여 명 가량의 피해자를 확보했다"며 "이번 소송에는 최대 500여명이 참여하고 손해배상청구액은 3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30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액은 국내에서 주가조작과 관련해 청구된 것으로 사상 최대다.

●"위험한 투자 하지 않는 것만이 최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시 불공정거래사례가 접수된 건수는 2005년 212건, 2006년 173건, 2007년 227건에 이른다. 주가조작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법적 소송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주가조작 행위와 주가 변동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회사 측이 보상해 줄 자금이 없거나 주모자들이 도주하는 사례가 많아 보상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은 사례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영남제분 사건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소송 기간도 5, 6년 정도로 길다. 1998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 벌어진 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은 2004년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원개발, 바이오 사업, 엔터테인먼트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해 기업 가치가 올라갈 것처럼 포장하는 기업이 많지만 장밋빛 전망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른바 '유행 테마'에 편승하거나 소문을 믿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 피해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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