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변론보다 로펌 변호인단에 등재 많아
이름만 빌려주고 수천만원 연봉 - 배당금도
美-日 등 선진국에서는 겸업행위 엄격제한
17대 국회의원 중 변호사 출신인 이른바 ‘폴리로여(Poli-Lawyer)’들이 회기 4년 동안 1인당 1건에서 많게는 70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아 재판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 아닐 경우 국회의원의 변호사 겸업이 허용되지만 ‘폴리로여’의 권한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겸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7000여 건 수임한 의원도
동아일보가 4일 전국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17대 국회 회기 4년(2004년 6월∼2008년 5월) 동안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국회의원 53명의 재판 참여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모두 43명(81.1%)이 사건을 수임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을 맡은 의원 43명 중 초선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재선 11명 △3선 6명 △4선과 5선이 1명씩이다. 소속 정당(2004년 당선 당시 기준)별로 보면 한나라당이 21명으로 가장 많았고 △열린우리당 19명 △자유민주연합 2명 △새천년민주당 1명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판결 재판보다 비교적 간단한 결정 재판(가처분 사건 등)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종결된 사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재판에 관여한 의원은 최용규 전 의원으로 4년 동안 이름이 올라간 판결문만 7128건이었다. 이 중 대부분은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빚 재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희망모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관련된 소액 채권추심(양수금) 재판이다.
법원 관계자는 “희망모아와 같은 양수금 재판은 수천 건을 한꺼번에 수임해 사실상 한 건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펌에 소속돼 변호인단에 공동으로 이름이 올려진 의원도 24명이나 됐다.
변호사 출신 의원의 재판참여 건수 | ||
국회의원 | 소속 | 재판참여 건수 |
최용규 | 열린우리당 | 7128 |
김영덕 | 한나라당 | 964 |
홍준표 | 〃 | 390 |
조성래 | 열린우리당 | 302 |
주호영 | 한나라당 | 207 |
이덕모 | 〃 | 154 |
정종복 | 〃 | 153 |
최재천 | 열린우리당 | 153 |
정성호 | 〃 | 149 |
주성영 | 한나라당 | 102 |
임종인 | 열린우리당 | 85 |
김학원 | 자유민주연합 | 85 |
황우여 | 한나라당 | 68 |
양승조 | 열린우리당 | 62 |
신기남 | 〃 | 54 |
문병호 | 〃 | 53 |
이상민 | 〃 | 44 |
이상열 | 새천년민주당 | 42 |
나경원 | 한나라당 | 40 |
박세환 | 〃 | 31 |
김종률 | 열린우리당 | 29 |
김재경 | 한나라당 | 26 |
박승환 | 〃 | 24 |
강재섭 | 〃 | 23 |
원희룡 | 〃 | 22 |
이원영 | 열린우리당 | 21 |
우윤근 | 〃 | 19 |
이명규 | 한나라당 | 19 |
유기준 | 〃 | 16 |
김재원 | 〃 | 14 |
김명주 | 〃 | 12 |
천정배 | 열린우리당 | 6 |
이상경 | 〃 | 5 |
문석호 | 〃 | 5 |
안상수 | 한나라당 | 5 |
최병국 | 〃 | 4 |
이인기 | 〃 | 3 |
유선호 | 열린우리당 | 2 |
엄호성 | 한나라당 | 1 |
이종걸 | 열린우리당 | 1 |
조배숙 | 〃 | 1 |
송영길 | 〃 | 1 |
이인제 | 자유민주연합 | 1 |
판결이 난 재판만 해당하며 명령, 결정 재판이나 검찰 수사단계에서 종결된 사건은 통계에서 제외(자료 출처 대법원). 소속은 17대 총선 당선 시 기준. |
○ “의뢰인이 의원 이름 보고 찾아와”
지역구가 경남에 있는 A 전 의원은 현역 시절인 2005년 초 서울의 한 법원에 나왔다. 자신의 지역구 사람의 민원에 못 이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맡게 된 것.
A 씨의 한 측근은 “당선 전에 수임한 사건으로, 소속 로펌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A 씨처럼 의원이 직접 재판에 참석해 변론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대부분은 로펌에 소속돼 있어 자신도 모르게 변호인단의 한 명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이 경우 수임료는 따로 받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일부 로펌에선 의원이 이름만 빌려주고 수천만 원의 연봉과 배당금을 받기도 한다.
한 로펌 관계자는 “의뢰인 중 국회의원 변호사 이름을 보고 찾아온 경우가 많다”며 “재판부에 ‘무언’의 압력을 넣기 위해 변호인단에 의원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전직 고위 간부는 “일부 의원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련해서 의원 권한을 이용해 공무원들에게 자료를 요구하는 등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털어놨다.
○ 시민단체 등 “영리 추구 금지해야”
국회법상 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이 아니면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을 겸업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의원의 겸직을 사실상 금하고 있거나 허용하더라도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 상하원 의원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의원 연봉의 15%가 넘는 외부 수입을 얻지 못한다. 일본은 겸업 수입의 신고 의무나 겸직 금지를 위반했을 때 일정 기간 등원 제한 또는 위원장직의 사임 경고 등의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측은 “18대 국회는 국회 내에 직무 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설치하고 의원의 포괄적인 영리행위 금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폴리로여(Poli-Lawyer)
정치인(Politician)과 변호사(Lawyer)의 합성어로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을 말한다. 폴리로여는 15대와 16대 선거에서 각각 41명이 당선됐고 17대엔 53명, 이번 18대에는 58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을 겸업할 수 있으나 2005년 7월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신설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변호사 겸업이 사실상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