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로여’ 선임은 재판부 압박용?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9분


■ 17대 국회 53명중 43명이 사건 수임

직접 변론보다 로펌 변호인단에 등재 많아

이름만 빌려주고 수천만원 연봉 - 배당금도

美-日 등 선진국에서는 겸업행위 엄격제한

17대 국회의원 중 변호사 출신인 이른바 ‘폴리로여(Poli-Lawyer)’들이 회기 4년 동안 1인당 1건에서 많게는 70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아 재판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 아닐 경우 국회의원의 변호사 겸업이 허용되지만 ‘폴리로여’의 권한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겸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7000여 건 수임한 의원도

동아일보가 4일 전국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17대 국회 회기 4년(2004년 6월∼2008년 5월) 동안 변호사 자격이 있는 국회의원 53명의 재판 참여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모두 43명(81.1%)이 사건을 수임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을 맡은 의원 43명 중 초선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재선 11명 △3선 6명 △4선과 5선이 1명씩이다. 소속 정당(2004년 당선 당시 기준)별로 보면 한나라당이 21명으로 가장 많았고 △열린우리당 19명 △자유민주연합 2명 △새천년민주당 1명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판결 재판보다 비교적 간단한 결정 재판(가처분 사건 등)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종결된 사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재판에 관여한 의원은 최용규 전 의원으로 4년 동안 이름이 올라간 판결문만 7128건이었다. 이 중 대부분은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빚 재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희망모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관련된 소액 채권추심(양수금) 재판이다.

법원 관계자는 “희망모아와 같은 양수금 재판은 수천 건을 한꺼번에 수임해 사실상 한 건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펌에 소속돼 변호인단에 공동으로 이름이 올려진 의원도 24명이나 됐다.

변호사 출신 의원의 재판참여 건수
국회의원소속재판참여 건수
최용규열린우리당7128
김영덕한나라당964
홍준표390
조성래열린우리당302
주호영한나라당207
이덕모154
정종복153
최재천열린우리당153
정성호149
주성영한나라당102
임종인열린우리당85
김학원자유민주연합85
황우여한나라당68
양승조열린우리당62
신기남54
문병호53
이상민44
이상열새천년민주당42
나경원한나라당40
박세환31
김종률열린우리당29
김재경한나라당26
박승환24
강재섭23
원희룡22
이원영열린우리당21
우윤근19
이명규한나라당19
유기준16
김재원14
김명주12
천정배열린우리당6
이상경5
문석호5
안상수 한나라당5
최병국4
이인기3
유선호열린우리당2
엄호성한나라당1
이종걸열린우리당1
조배숙1
송영길1
이인제자유민주연합1
판결이 난 재판만 해당하며 명령, 결정 재판이나 검찰 수사단계에서 종결된 사건은 통계에서 제외(자료 출처 대법원). 소속은 17대 총선 당선 시 기준.

○ “의뢰인이 의원 이름 보고 찾아와”

지역구가 경남에 있는 A 전 의원은 현역 시절인 2005년 초 서울의 한 법원에 나왔다. 자신의 지역구 사람의 민원에 못 이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맡게 된 것.

A 씨의 한 측근은 “당선 전에 수임한 사건으로, 소속 로펌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A 씨처럼 의원이 직접 재판에 참석해 변론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대부분은 로펌에 소속돼 있어 자신도 모르게 변호인단의 한 명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이 경우 수임료는 따로 받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일부 로펌에선 의원이 이름만 빌려주고 수천만 원의 연봉과 배당금을 받기도 한다.

한 로펌 관계자는 “의뢰인 중 국회의원 변호사 이름을 보고 찾아온 경우가 많다”며 “재판부에 ‘무언’의 압력을 넣기 위해 변호인단에 의원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전직 고위 간부는 “일부 의원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관련해서 의원 권한을 이용해 공무원들에게 자료를 요구하는 등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털어놨다.

○ 시민단체 등 “영리 추구 금지해야”

국회법상 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이 아니면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을 겸업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의원의 겸직을 사실상 금하고 있거나 허용하더라도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 상하원 의원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의원 연봉의 15%가 넘는 외부 수입을 얻지 못한다. 일본은 겸업 수입의 신고 의무나 겸직 금지를 위반했을 때 일정 기간 등원 제한 또는 위원장직의 사임 경고 등의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측은 “18대 국회는 국회 내에 직무 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설치하고 의원의 포괄적인 영리행위 금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폴리로여(Poli-Lawyer)

정치인(Politician)과 변호사(Lawyer)의 합성어로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을 말한다. 폴리로여는 15대와 16대 선거에서 각각 41명이 당선됐고 17대엔 53명, 이번 18대에는 58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을 겸업할 수 있으나 2005년 7월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신설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변호사 겸업이 사실상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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