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쇠고기 하투?

  • 입력 2008년 6월 6일 02시 53분


한국노총도 거리로…한국노총 조합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한국인들이 좀 더 배우기를 바란다”고 한 발언을 규탄한 뒤 재협상을 촉구하는 서한을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연합뉴스
한국노총도 거리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한국인들이 좀 더 배우기를 바란다”고 한 발언을 규탄한 뒤 재협상을 촉구하는 서한을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연합뉴스
자리에 앉고 있는 美대사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5일 국회를 방문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악수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자리에 앉고 있는 美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5일 국회를 방문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악수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개혁 저지 등 노동현안 주도권 포석… 재계 “힘든 경제에 찬물”

■ 민노총, 총파업 투표

민주노총이 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이유로 총파업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것은 기업친화적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공공부문 개혁, 비정규직법 개정 등 각종 노동 현안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대통령 선거 및 총선을 거치면서 급격히 세력이 약화된 범(汎)좌파 진영이 미국산 쇠고기를 빌미로 다시 집결해 재기(再起)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는 정부가 노동계의 강경 투쟁에 밀려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지 않으면 지난 정권처럼 앞으로 각종 노사문제에서 ‘불법파업→정부 중재→노조 요구 수용’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민노총 “이달 말, 7월 초 총력투쟁”

민노총이 총파업 찬반 투표에 나선 배경은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이 이날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초청 간담회에서 한 발언에서 일부 감지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민노총도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중시했지만 정부나 기업계가 오히려 장벽을 쌓고 대화를 거부하며 무력화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노사, 노정(勞政)관계가 악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은 1%의 재벌을 위한 기업경영식 시장독재”라며 “이달 말에서 7월 초에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계, 특히 민노총의 위상이 약화되자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로 악화된 대정부 여론에 편승해 총파업에 나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노총은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 4개 완성차업체와 벌이고 있는 산별교섭 체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고,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저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경제계는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법 개정, 2010년 시행되는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유예 등 각종 노동 현안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게 민노총의 복안이다.

○ 재계 “정치파업 안 된다”

민노총의 이 같은 움직임에 경제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재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노조의 격렬한 파업인데, 민주노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이유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한다는 것은 외국인의 발걸음을 돌리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노총이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불법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조사2본부장은 “민노총이 진정으로 노사관계를 생각한다면 정치 파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노동 문제와 관련 없는 국가 간 협상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총의 파업 동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석행 위원장은 당초 반(反)정부 여론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파업을 하면 투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이날 총파업을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파업동력 부재 등의 이유로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더라도 참여하는 조합원이 많지 않아 길거리 투쟁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계에서는 2003년 두산중공업 파업 사태를 떠올리며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노동부 장관이 직접 현장에 내려가 노조의 요구를 상당 수준 수용하는 방향으로 파업을 중재하면서 노동계의 기대심리를 크게 높였고 이후 불법파업의 악순환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재협상과 같은 결과 얻을수 있도록 할것”

버시바우, 강재섭 대표 면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5일 쇠고기 문제 재협상과 관련해 “재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며 “형식이 다를지 모르지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재협상과 같은 게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오전 11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하는 패키지 정책 마련을 위해 양국이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이 전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과 미국 같은 선진국 사이에서 이번 협정 자체를 재협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뒤 “민간업계 사이에서 약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어떤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양국 정부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쇠고기는 이제 국민의 건강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인 이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워싱턴에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아울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일부 부정적 보도가 있지만 연말까지 기회가 있다. 상호 이익을 위해 동반자적 견지에서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 방침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수입이 안 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국회 차원에서는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진행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한국인들이 더 배워야 한다’고 했던 3일 발언에 대해 “진의와 달리 와전돼 상당히 당황했다”며 “당시 발언이 한국과 한국인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고 조 대변인은 전했다.

강 대표는 이날 버시바우 대사에게 “민감한 쇠고기 문제에 언행을 조심해 달라”고 말한 뒤 “한국은 고유한 농경국가로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쇠고기에 스며 있다. 미국 정부와 국민, 대사는 이런 독특한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또 여당의원 5, 6명이 9일 미국으로 가 의회와 정부 지도자, 축산업자들을 만났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했고, 버시바우 대사는 “시간이 촉박하지만 방문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영상 취재 : 박경모 기자

정부, 美측에 ‘신중한 언행’ 당부

정부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관련해 미국 측 인사들의 발언이 자칫 한국 내 반미(反美) 감정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외교 경로를 통해 미 측에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3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 이후 언론에 밝힌 발언으로 인해 국내 정치권이 반발하고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을 4일 미 대사관 측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3일 유 장관을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에 ‘실망했다(disappointed)’거나 ‘한국인들이 미국 쇠고기에 관한 사실과 과학에 대해 좀 더 배우게(learn) 되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반발을 불렀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국민 안심할 때까지 검역 계속 중단할 것”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중단하기로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단 검역주권을 사용해 빗장을 걸어뒀으며 앞으로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검역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장관으로서 검역 중단 조치를 취한 만큼 진정성을 알아 달라”며 “미국 수출업계의 자율결의가 나오더라도 국민이 믿을 수 있고 국민이 이해할 만한 내용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앞서 3일 “미국 업계의 자율결의도 ‘답신’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날 태도는 종전보다 강경했다.

미국 업계가 자율규제를 하더라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국제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안인데 쉽게 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혜민 통상교섭본부 자유무역협정(FTA) 교섭 대표는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는 미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며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회창 총재 “현충일엔 촛불집회 멈추자”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현충일인 6일 하루 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이 총재는 5일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현충일 하루만이라도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돼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주권국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쇠고기 재협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고 그 마음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면서 “(현충일은) 쇠고기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야 하는지를 대통령부터 정부와 여야, 국민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함께 조용히 생각해보는 날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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