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삼보일배 - 광주 촛불집회… 전국 동시다발 개최
대학생 1000여명 여의도 한나라당사에 계란 투척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은 1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로 등엔 8만여 명(경찰 추산·주최 측 60만 명 추산)이 촛불 시위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를 마친 뒤 종로와 서대문, 명동 방향으로 나눠 행진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쳤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95곳에서 동시에 열린 촛불집회에도 7만7000여 명이 참여했다.
▽도심 일대는 촛불로 가득=1700개 시민사회단체와 누리꾼 모임이 참여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오후 7시부터 ‘6·10 100만 촛불대행진’을 열었다. 당초 집회 장소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었지만 보수단체가 서울광장을 먼저 차지해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대책회의는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시위대를 향해 ‘전면 재협상, 이명박 정부 심판’을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일반 시민, 학생뿐만 아니라 양대 노총,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재야, 종교인, 정치인이 대거 참여했다.
오후 8시경 가수 양희은 안치환 씨가 무대에 올라 각각 ‘아침이슬’ ‘광야에서’를 불러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어 영화배우 문소리 씨는 “정부는 국민의 의사에 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고, 쇠고기 수입은 그 선결과제였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교육, 의료, 운하 정책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리를 함께한 고 박종철 씨의 아버지 박정기 씨도 “이명박 정권이 생각을 바꾸고 국민의 뜻에 따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9시경 집회를 마친 시위대는 여러 갈래로 흩어져 서대문, 서울역, 명동, 안국동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일부 시위대가 대형 스티로폼으로 계단을 만들어 경찰의 컨테이너 차단벽을 넘으려 했지만 ‘비폭력’ ‘평화시위’를 외치는 시민들의 만류로 포기했다.
서대문 방향으로 이동한 시위대 3000여 명은 오후 9시 반경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어청수는 나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이들은 독립문 사거리에서 거리를 막아선 경찰버스의 주유구를 열기도 했다. 이어 기름이 새어나오자 차량 폭발을 우려해 황급히 촛불을 끄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국동 방향의 시위대 1만5000여 명은 안국 사거리에서 오후 10시 반경부터 자유발언 등을 펼치며 자체 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18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 출마하며 화제를 모았던 래퍼 김디지 씨가 참여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힙합 노래를 불렀다.
오후 11시 반경 한국대학생문화연대 소속 학생 1000여 명이 여의도로 몰려가 한나라당 중앙당사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고시철회, 미국산 수입 쇠고기 재협상” 등의 구호를 외치며 계란을 던졌다.
이날 가두행진은 자정 무렵 물리적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이후에는 참가자들이 세종로와 종로 일대 도로, 청계광장 등 수십 곳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풍물패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전집회 기념행사도 밀물=집회 전 각종 시민단체가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로 시민의 시위 참여를 유도했다.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100여 개의 연날리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미FTA농축수산비상대책위는 오후 2시부터 명동거리에서 우리 쌀로 만든 인절미를 나눠 주며 촛불집회 동참을 호소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광화문 일대에서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에게 “촛불집회 함께해요”라는 구호를 외쳤다.
오후 5시에는 ‘광우병 청년대책회의’ 회원 100여 명이 명동성당 앞에서 거리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우리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넥타이 부대가 나섭시다’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민의 참여를 독려했다.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기념한 행사도 이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1987년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태동했던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낮 12시 기념 타종식을 하고 시청 앞으로 행진했다.
▽도심에 컨테이너 등장=출근길에 나선 시민들은 서울 도심에 나타난 대형 컨테이너를 보고 황당해했다.
세종로에 최대 규모의 시위대가 모일 것으로 예상한 경찰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도로에 설치했다. 경찰은 컨테이너 60개를 동원해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 곳곳을 막았다. 컨테이너를 2층으로 쌓고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모두 용접했다.
컨테이너 안에는 모래와 물을 채워 넣었다. 컨테이너 한 개의 무게가 4t이나 되고 2층 벽 높이가 5m를 넘는 등 사다리로도 넘을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었지만 대규모 시위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안전을 이유로 컨테이너를 동원했지만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컨테이너 벽을 만들기 위해 세종로의 양방향 차로 10개 중 2개만 통행을 허용하면서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진 탓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아침부터 시민의 항의전화가 수백 통 왔다”며 “경찰에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양해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전국적 촛불집회 물결=부산에서는 오후 7시 서면 쥬디스태화 옆에서 2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6·10항쟁 21주년 100만 촛불대행진 부산행사’가 열렸으며, 시민사회단체 대표자와 원로, 종교인 등 100여 명은 삼보일배 행진을 했다.
같은 시각 광주·전남 비상시국회의도 광주 금남로 삼복서점 앞에서 시민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촛불집회를 열고 한나라당사를 왕복 행진했다.
대구와 울산 대전 경북 강원 충남 등지에서도 수백 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6·10항쟁 21주년 촛불집회’가 열렸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