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집에서 납치된 초등학교 6학년 허은정(11·사진) 양이 2주 만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이 정확히 몇 명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확인되지 않아 수사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체 발견=경찰은 12일 오후 5시경 대구 달성군 유가면 봉리 허 양의 집으로부터 2km가량 떨어진 용박골 8분 능선에서 허 양의 시체를 찾았다.
상하의가 모두 벗겨진 채 엎드린 모습이었다. 부근 나뭇가지에는 허 양의 반바지가 걸려 있었다.
시체는 계곡 옆으로 난 임도에서 5m가량 떨어진 비탈길에 있었으며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경찰이 이날 낮 12시부터 전·의경 5개 중대 500여 명과 헬기를 동원해 허 양의 집 부근을 정밀 수색하던 중 부산소방본부 소속 인명탐지 구조견 2마리가 발견했다.
시체 상태로 미뤄 허 양이 납치된 날에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범인들은 잠에서 깨어 누워 있던 허 양의 할아버지(72) 얼굴을 마구 때렸다. 허 씨가 비명을 지르자 옆방에서 허 양이 달려왔다.
허 양이 폭행을 말리자 범인들은 갑자기 허 양을 끌고 나갔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금품을 요구하거나 협박하는 전화가 한 번도 없어 허 양을 우발적으로 납치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시체가 발견된 곳은 인적이 드물어 이 일대를 잘 아는 사람의 범행으로 보인다.
허 양 부모는 6년 전부터 별거 상태로 경기 화성과 부산에서 따로 살고 있다. 할아버지인 허 씨는 월세 5만 원을 내며 어렵게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부진=납치범들은 범행 당시 “죽어봐라. 당신은 한번 맞아야 된다”며 허 씨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따라 경찰은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주변인물을 수사했다. 최근에는 강절도 및 성폭력 범죄전력자도 탐문 대상에 넣었다.
허 씨는 범인이 1명이었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2명으로 말을 바꿔 정확히 몇 명인지 경찰은 확인하지 못했다.
비공개로 수사하던 경찰은 3일부터 공개수사로 바꾼 뒤 허 양의 사진과 인상착의를 담은 전단 1만7000장을 대구 경북 일대에 배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빙성 있는 제보가 없고 전화를 걸어 요구사항을 전하는 일반적 납치 사건과 달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