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개인의 권리를 앞세우면…

  • 입력 2008년 6월 16일 02시 57분


시민의 요구-정부의 방침 팽팽히 맞서는 ‘쇠고기’

개인의 이익, 국익과 늘 같아야 할까

▒ 생각의 시작

우리는 위인전기에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우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 의로운 기개에 감동을 받는다. 일제강점기 저항시인들의 작품 속에서도 광복을 향한 그들의 불타는 의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많은 백성들도 불타는 적개심으로 일제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민족의 역적이자 배신자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늘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가 언제나 개인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극단적 ‘국가주의’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독립? 신통할 것이 없었다. 독립이 되기로서니 가난뱅이 농투산이가 별안간 나으리 주사 될 리 만무하였다. 가난뱅이 농투산이가 남의 세토(貰土=小作) 얻어 비지땀 흘려 가면서 일년 농사 지어 절반도 넘는 도지[小作料] 물고 나머지로 굶으며 먹으며 연명이나 하여 가기는 독립이 되거나 말거나 매양 일반일 터이었다. (중략) “일 없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삼십육년두 나라 없이 살아 왔을려드냐.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 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그래 백성이 차지한 땅 뺏어서 팔아먹는게 나라 명색야?” 그러고는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독립 됐다구 했을 제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채만식, 논 이야기]

이 작품은 한 생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엉뚱한 모함을 씌워 농토를 빼앗아 가던 구한말 시대나, 일제 강점 하에서 일인들에게 농토를 수탈당하던 시대, 독립을 맞아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현재가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을 풍자하고 있다. 동시에 개인의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국가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냉소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며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건강치 못한 시민 정신임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농투성이가 개인의 이익에 얽매여 국가 전체의 이익을 바라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건전하지 못한 시민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 뒤집어 보자


본래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러한 상태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정치권력에 복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사회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도는 재산을 안전하게 향유하고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좀 더 많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그들 상호간에 편안하고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존 로크, 통치론]

로크는 국가의 기원과 목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한다. 국가는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혹은 신의 뜻에 의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는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만든 계약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국가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사회 구성원)이 결합하여 만든 공동체이므로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가를 통한 단일한 이해관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라의 독립이 개인의 행복이나 이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립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한 생원도 자신의 자유와 재산의 안전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고 오히려 이는 개인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논리를 내세워 한 개인의 이익 추구를 단지 편협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개인에게 가해진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요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사회가 시끄럽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국가의 협상에 반대하고, 정부는 많은 근거를 제시하며 국익의 차원에서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민 개인들과 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과연 많은 시민들을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들로 몰아세울 수 있을까?

김수영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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