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노조의 ‘반기’

  • 입력 2008년 6월 17일 03시 04분


“투표 부결은 조합원 정서 무시한 결과

집행부, 총 조합원 수 안밝혀 부끄럽다”

《“대다수 조합원의 정서를 무시하고 민주노총이 정치파업 투표를 강행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한미 쇠고기 협상 무효화 등을 위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16일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로 나오자 한 조합원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투표 결과를 외면하고 노조가 민주노총 주도의 총파업에 동참할 경우 내부 반대에 부닥쳐 내분을 겪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 설립 이후 첫 부결=현대차 노조는 3만8637명이 투표에 참가해 찬성 2만1618명, 반대 1만6813명으로 투표자 대비 55.95%가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투표자의 과반이 아니라 전체 조합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파업을 할 수 있다.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차지부 규정(제45조)도 ‘재적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투표율과 총 조합원 수는 발표하지 않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1월 10일 현재 조합원이 4만4566명으로 나와 있으므로 찬성률이 48.5%에 그친 셈이다.

회사가 파악한 조합원은 4만4700여 명. 이를 근거로 환산하면 찬성률은 48.36%가 된다.

현대차 노조가 1987년 출범한 이후 쟁의행위와 관련한 찬반투표는 한 번도 빠짐없이 가결됐다는 점에서 조합원들의 불만을 짐작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5차례 실시한 정치파업 관련 찬반투표에서도 예외 없이 재적 대비 과반수가 찬성했다. 임금 및 단체협상과 관련해서도 지금까지 전체 조합원의 54.8∼81.0%가 찬성표를 던져 파업안을 가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산별노조 지부이므로 지부의 찬성률은 중요하지 않고 상급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의 찬성률에 따르면 된다.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의 지부로서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파업에 참가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현장 목소리=현대차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총 조합원 대비 찬성률이 아니라 투표자 대비 찬성률로 가결을 선언한 집행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법과 규정에 따르면 분명히 부결됐는데 왜 가결됐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조합원의 분명한 정서는 정치파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ID 현장에서)

“이번 투표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정치파업에 앞장서온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ID 파업)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은 “총 조합원 수를 밝히지 않은 채 부결을 가결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국내 최대 노조인 현대차 노조답지 않는 비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 반대 운동을 주도한 ‘행복도시 울산 만들기 추진위원회’의 간부는 “국민의 정서를 생각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노조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망=민주노총이 미국 쇠고기 협상 무효화 등을 촉구하며 가결을 선포하고 다음 달 초 파업에 돌입할 경우 현대차 노조는 상당한 부담을 안을 것으로 보인다.

절반 이상의 지부 조합원이 찬성하지 않은 만큼 이를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노동계의 맏형이자 민주노총의 주력부대’로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현재 진행 중인 금속노조와 회사의 협상이 사용자 단체의 불참으로 진전이 없자 20일 조정신청을 거쳐 26, 27일 이틀간 찬반투표를 다시 실시할 예정이다.

현대차 노조는 열흘 뒤 실시하는 투표는 이번의 정치파업과는 달리 임금협상과 관련된 사안이므로 찬성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결되면 민주노총의 파업과는 별도로 조정기간이 끝나는 30일 이후 쟁의행위에 돌입할 계획이다.

고유가 등 대내외적으로 경제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파업에 나설 경우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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